포지셔널 소프트웨어: 최고의 프로덕트는 어떻게 널리 알려지는가?

우리는 우리가 쓰는 소프트웨어로부터 우리를 볼 수 있다. 오늘 최고의 프로덕트는 이 점을 활용해 각자의 부족을 만든다.

포지셔널 소프트웨어: 최고의 프로덕트는 어떻게 널리 알려지는가?

이 글은 Capiche의 에디터 Matthew Guay가 쓴 Positional Software: How today’s best business software goes viral을 번역한 글입니다.


일본의 스시 장인 지로가 스시를 만드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허접스러운 싸구려 칼로 생선을 손질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사인 볼트도 동네 아울렛에서 할인가에 살 수 있는 운동화를 신고 경기에 임하지는 않을 것이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초보자용 싸구려 바이올린으로 연주하지는 않는다. 포드도 페라리를 상대로 아무 자동차를 타고 르망 (Le Mans)를 우승하지는 않았다.

전문가는 전문 도구를 사용한다. 전문 도구들은 여러 차례 고도의 검증 과정을 거쳤으며, 매번 세밀하게 개선되었고,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게 만들어졌다. 전문 도구는 까다롭고 예민한 전문가들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오직 극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쓰던 전문 도구의 특별한 속성들은 자연스럽게 대중에게까지도 내려온다. 발전하는 인류는 계속해서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낸다. 더 좋은 것은 소수의 전문가 집단에서 시작해 대중에게도 제공되고, 이 과정은 계속해서 더 좋은 것을 위한 동력을 만들어 낸다.

그 과정에서 전문 도구들중에서도 최고는 일종의 ‘아이콘’이자 ‘승리의 상징’이 된다. 당신이 일하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가장 뛰어난 신발이나, 가장 빠른 자동차, 혹은 가장 날카로운 칼이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당신이 일할 때, 이러한 최고의 도구들을 사용하면 어쨌든 마치 당신도 최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은가? 그래서 최고의 도구들은 아이콘이자 승리의 상징이다. 달(月)에 갔다 온 시계를 차면, 당신도 어쩌면 달에 갈 만큼 미친 생각 (moonshot)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소프트웨어서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소프트웨어는 원래 평등했다. 앤디 워홀 (Andy Warhol)이 “모든 코카콜라는 똑같고, 모든 코카콜라는 맛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소프트웨어 역시 그랬다. 구글의 지메일(Gmail)은 200달러짜리 크롬북에서든 2,000달러짜리 맥북에서든 잘 돌아간다. 엑셀(Excel)에서 만든 포트폴리오 시트는 1,000달러짜리 투자 포트폴리오든 1억 달러짜리 포트폴리오든 다 잘 돌아간다.

그런데 만약에 일부 소프트웨어가 월등해진다면 어떨까? 각 분야 프로페셔널을 위해 특별하게 제작된다면?

이메일로 업무를 주로 하는 사람들은 10%의 생산성 향상을 보장해주는 새로운 이메일 앱에 얼마나 돈을 낼 것인가? 재무관리에 특화된 채팅 메신저 앱에 과연 재무 관리자들은 돈을 낼 것인가? 좀 더 좋은 노트 앱을 도입하기 위해 과연 얼마나 많은 학자, 연구원들이 라이브러리를 새로 만들 것인가?

프로페셔널을 위한 포지셔널 소프트웨어(positional software)가 탄생했다. 오직 소수만이 흡족해 할만한 도구들 — 새롭게 탄생하고 있는 산업에서의 전문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전문적인 도구들.

이런 도구들은 디자인과 협업에 초점을 맞춘다. 조직에서는 주로 바텀-업(bottom up)으로 도입되며, 대부분의 경우 기존 경쟁자들에 비해 다소 비싼 ‘프리미엄’ 가격을 붙인다.

위에서 말한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는 여느 명품 럭셔리 상품들처럼 그 분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도구들, 그런 도구들에 전문가이거나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에디터 전쟁

“최고”의 소프트웨어 만들기는 프로그래머들이 프로그래머들을 위해 도구들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MIT의 연구진은 기존에 쓰던 텍스트 에디터보다 더 좋은 텍스트 에디터를 만들었고, Emacs라는 이름을 붙였다. UC버클리의 연구진도 마찬가지로 더 좋은 텍스트 에디터를 만들고자 했고, Vi라는 새로운 텍스트 에디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Emacs는 굉장히 자유도가 높아 프로그래머들은 Emacs를 통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었다. IDE(개발자들이 코드를 관리하는 프로그래밍 툴)도 되었다가, 이메일 앱도 될 수 있었다. Vi의 경우에는 극단적으로 자유도가 낮고 단순해서, 정말 텍스트만 편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였다.

둘이 이렇게나 달랐지만, 각자 고유의 방법을 통해 개발자들에게 더 좋은 텍스트 에디터를 제공했다. 하나는 커스터마이징이 자유로워 개발자들이 ‘바퀴를 다시 개발할’ 필요를 덜어주었고, 다른 하나는 개발자들이 원래 본질적 목적대로 쉽고 편하게 텍스트 에디팅을 할 수 있게 했다.

재밌는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Vim과 Emacs 둘 중에 어떤 쪽을 선호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성향의 개발자인지 알 수 있다. 극단적인 단순함을 통해 한가지 목적, 즉 텍스트 에디팅을 잘하게 해줄 것인가, 아니면 자유로운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사용자의 입맛에 맞게 맞춰서 쓰게 할 것인가.

Vim과 Emacs는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들이다.

각 업무를 잘할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점령해가면서, 비단 개발자만이 더 좋은 소프트웨어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앉아서 하는 일은 모두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제는 모두가 더 좋은 업무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 더 좋은 소프트웨어 도구를 찾는다.

물론 각 분야에서 ‘더 좋은 소프트웨어’는 언제나 항상 있었다. 우리는 이런 도구를 “니치(niche) 소프트웨어”라고 부르는데, 포지셔널 소프트웨어와 다른 점이라면, 니치 소프트웨어는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산업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주로 사용하는 도구들을 말하는 것이다.

니치 소프트웨어는 대게 배우기 어려워서 시간을 들여 공부할 만큼 필요한 사람들이나 사용하는 도구들이었다.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나 쓰는 극소수만의 소프트웨어다.

그런데, 무언가 바뀌었다. 이들 도구가 갑자기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이 도구들을 중심으로 프로페셔널의 정체성을(identity) 만들어가기 시작할 만큼 대중적으로 변해갔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쉽게 풀어 얘기하자면, 요식업계에 등장한 요리 방송이 등장한 것과 같은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다. 요리 방송으로 인해 사람들이 쉐프들이나 사용하던 프리미엄 재료와 식칼과 같은 도구들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과 같은 변화가 소프트웨어 업계에도 일어나게 된 것이다.

오늘날 포지셔널 소프트웨어가 되려면 몇 가지 ‘재료’가 필요하다.

1. 공개적으로 쓰인다.

아마도 소프트웨어를 사용함으로써 ‘남들과는 다르다’와 같은 차별화를 유도한 분야는 이메일이 처음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핫메일(Hotmail)이 제일 처음이었다. 모두가 돈을 받고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할 때, 핫메일은 이메일 서비스를 무료로 풀었다. 그리고 모든 이메일 하단에 “get your free email at Hotmail” 문구를 붙여 이메일을 받는 수신자도 핫메일 유저로 갈아타게 유도했다.

이것은 아마도 최초의 “그로스 해킹” 사례일 것이고, 애플의 iPhone과 슈퍼휴먼(Superhuman)도 1-20년 뒤에 따라 할 만큼 대단했다.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만들어 낸 소프트웨어 도구들을 들여다보면, 모두 이러한 공개적인 속성 – 또는 "보여지는" 속성이 있었다.

좋은 예가 도메인이다. 사실 이메일 프로그램의 경우 각자가 아웃룩을 쓰든, 애플 메일을 쓰든 각자의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것이니 사람들이 서로 무슨 도구를 쓰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메일 도메인은 달랐다. 도메인 주소는 상대방에게도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이메일 프로그램 자체와는 다르게 @gmail.com, @hotmail.com과 같은 도메인 주소는 내가 무슨 도메인을 ‘선택’했는지 알려주는 신호다. 디지털 ‘정체성’을 도메인 주소를 통해 확립하게 된 것이다. Hotmail은 이런 점을 잘 활용했다. Hotmail을 쓰는 사람은 더욱더 신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활용한 것이다.

Callout: 예전에 한국에서도 @naver.com, @hanmail.net 도메인으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은 기피하라는 불문율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비슷한 선상에 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보여지는 것까지 신경쓰는 사람들이 더 '프로페셔널'하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는 얘기일테니.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들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오늘까지도 (핫메일이 개척한) 공개적인 속성을 활용했던 방법을 적용한다.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는 일부러 당신이 남들과는 “다른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더 좋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한다. 당신은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를 사용함으로 남들과는 구별되는 사람이 된다.

이메일 스타트업 슈퍼휴먼(Superhuman)은 발송되는 모든 이메일 하단에 “Sent via Superhuman” 텍스트를 추가한다. Hey.com은 모든 유저가 필수로 @hey.com 도메인으로 이메일 주소를 만들게 한다. 디자인 도구인 Figma는 파일을 figma.com 도메인을 통해 공유할 수 있게 하고, 노션(Notion)도 마찬가지다. 서베이 도구인 Typeform도, Slack의 인바이트도 다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공개적인, 또는 보여지는 속성을 활용해 당신의 동료들이 당신이 사용하는 새로운 도구를 인지하게 만든다. 그리고 당신과 협업하기 위해서 그 도구들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이런 속성을 활용하는 것은 블룸버그 터미널이 사실 원조다. 트레이더들이 동료 트레이더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블룸버그 터미널을 도입해야만 했다.

물론 공개적으로 보이는 것을 유도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Hotmail로 옮긴 이유는 딱히 더 좋은 도구를 찾아서라기보다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Hotmail도 역시 “구식”이 되어버렸다. 오늘날에는 @hey.com 의 주소가 옛 Hotmail의 역할을 한다. 앞서나가는 사람들의 상징인 것이다. 이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여기에 희소성이 더해진다면 더 큰 경제적 해자로 성장할 수 있다.

2. 희소성

무료 이메일은 많은 사람을 쓰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만일 제한된 숫자의 사람들에게만 무료 이메일을 제공한다면,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다.

2004년 만우절에 출시한 지메일(Gmail)은 기본적으로 기존에 경쟁사들이 제공하던 용량보다 훨씬 더 많은 용량을 그것도 무료로 제공했다. 또한 기존 경쟁 제품들의 밋밋한 인터페이스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지메일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메일은 여기에 초대장을 통해서만 가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더했다. 사용자 수를 제한해 희소가치를 만든 것이다. 정해진 사람들만 먼저 초대를 받아 지메일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리고 오직 선택받은 자들만이 한 명당 고작 몇 명 정도에게 초대장을 보낼 수 있는 특권을 부여 받았다.

이 전략은 지메일을 단번에 최고의 이메일 서비스로 만들었다. 또한 구글이 수년간 지메일 프로덕트를 고도화하고 완성도를 끌어올릴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덕분에 지메일은 출시 후 5년씩이나 “베타” 상태를 유지했다.

시간을 벌어준 것도 중요하게 짚을 부분이지만, 더 중요하게는, 사람들이 초대장으로만 가입할 수 있는 지메일에 열광했다는 점이다. 모두가 지메일을 원했다. 그러나 아무리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다. 지메일은 한때는 럭셔리 상품으로도 불리기까지 했다. 온라인 경매사이트인 eBay에서는 한때 지메일 초대장이 150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이처럼 희소가치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조차 제품에 열광하게 만들고, "너는 없지만 나는 갖고 있기에" 사람들 스스로 제품을 홍보하게 만든다.

지메일이 만일 초대장 없이도 가입할 수 있는 무난한 소프트웨어였다고 가정해보자. 일부 사용자는 지메일에 관해 얘기할 수도 있고, 스스로 홍보하고 다닐 수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쓸 것이다. 아무 얘기 없이, “야, 지메일 좋다” 얘기 없이, 그냥 만족하며 썼을 것이다.

초대장 시스템은 이미 좋은 프로덕트를 폭발적으로 유통하는 좋은 채널이다. 초대장 시스템 때문에라도 사람들은 더욱 지메일에 대해 말하고 다닐 것이다. 세상에는 지메일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지메일에 부러움을 느낀 동료, 친구, 가족은 당신에게 초대장을 보내 달라고 애원할 것이다.

이 상황에 소셜미디어를 넣어보자.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런 메시지들이 전달되기 시작하면 희소가치가 있는 소프트웨어, 그러니까 초대장 없이는 가입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는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향력 있는 몇 사람만 초대를 받아도 제품은 공개적으로 소문나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희소성 역시 희소성을 유지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는 성장하는 데 한계가 분명 있다. 지메일로 큰 성공을 만든 구글도 이후 구글 웨이브(Google Wave) 출시에는 같은 전략을 적용했지만 결과는 실패로 돌아왔다.

희소성은 소프트웨어에 매력(allure)을 입힐 뿐, 그것 자체만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다. 더군다나 오늘은 많은 기업의 핵심 출시 전략으로 쓰이고 있다. 슈퍼휴먼(Superhuman) (아직도 초대장이 없으면 가입을 못 한다), 클럽하우스(Clubhouse) (슈퍼휴먼보다도 더 폐쇄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Hey.com (출시 이후 1~2주 정도까지만 유지했다), 그리고 Linear (베타 기간에만 유지했다)이 대표적인 사례다.

초대장 시스템은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공유를 이끌어 낸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그보다는 소프트웨어 내에서 이루어질 협업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더 큰 기회가 숨어있다.

3. 우선은 당신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소프트웨어다. 그런 다음에는, 당신의 팀이 만족할 만한 소프트웨어가 된다.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라도 사용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 없다.

예전에는 회사내 IT 팀에서 조직에서 쓰일 모든 소프트웨어 도구들을 결정하고 관리했다. 그러니 직원들이 나서서 더 좋은 도구를 찾거나 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그보다는 이미 IT팀의 승인을 받은 도구들이나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편이 더 나았다.

오늘날에는 크게 두 가지가 변화했다. 먼저는 기업들이 직원들의 개인 장비들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하는 BYOD (Bring Your Own Device) 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직원들은 소프트웨어 역시 원하는 도구들을 골라서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둘째는 웹 기반 (브라우저) 소프트웨어들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IT팀의 승인을 받아야 하거나 설치를 해야 하는 수고로움 없이도 브라우저만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직원들은 데스크톱에 설치된 – IT 승인을 받았지만 – 구닥다리 소프트웨어를 쓸 이유가 없어졌다. 브라우저만으로도 충분히 최신의 소프트웨어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최신 소프트웨어들은 대부분 혼자서만 쓰는 도구들이 아니였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소프트웨어들은 대부분 협업을 중심으로 디자인된 ‘멀티플레이어’ 도구들이다.

당신은 사내 해커톤을 슬랙(Slack)으로 진행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써보니 “좋은데?” 하며 연이어 들 생각은 ‘우리 팀에도 슬랙을 도입해볼까?’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당신은 Slack.com에 접속해 새로운 워크스페이스를 만들고 팀원들을 초대해본다. 여기서 희소가치가 발휘된다. 그 모습을 본 옆 팀도 Slack을 도입한다. 체감하기도 전에 이미 전사적으로 쓰고 있는 모습을 볼 것이다.

구글 독스(Google Docs)를 도입하는데 팀원 모두가 한 번에 가입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영향력 있는 사람 한두 명 정도가 구글 독스를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협업을 위해 팀원들을 초대하기 시작한다. 공유와 협업이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팀 전체가 쓰기 시작한다. Airtable도 데이터베이스의 영역에서 비슷하게 성장했다. Figma 역시 디자인 영역에서 그랬고, Notion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몇 백, 몇 천 명을 만족시킨 것이 아니다. 고작 몇 명 정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췄다. 그러나 몇 명을 그들의 편으로 만들고 나서부터는 시간이 지나면서 매스 마켓에서도 따라 열광했으며, 큰 회사들마저도 직원들이 스스로 도입하여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핵심은, “몇 명 정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출 정도가 된다”라는 명제다. 필수 요건이다.

4. 타협하지 않는 소프트웨어 (Opinionatedly different software)

“미친 자들에게 찬사를.”
“Here’s to the crazy ones,”

애플이 말했다. 애플은 그들이 세상을 “다르게” 본다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표현이다.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는 고집스럽게 다름을 추구한다. 타협하지 않는다. "다르게” 일하는 것을 강제한다.

구글의 지메일은 이메일에서 “폴더”라는 개념을 아예 빼버리고 Archive 기능을 Delete 기능보다 우선했다. 이메일들을 관리하고 싶다면 폴더가 아니라 Tag 기능을 쓰도록 강제했다. 서베이 폼인 Typeform은 한 번에 한 질문씩만 나오도록 했다. (기존 서베이 폼 서비스는 모든 질문을 한번에 보여주는 리스트 방식이었다) 슈퍼휴먼은 대부분의 버튼을 숨겨버리고 단축키만으로 사용자가 이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돌록 강제했다. Figma는 파일의 내부 구조를 없애버렸다. 목업과 프로토타입과 시안과 최종안의 구분이 애매모호하게 만들어버렸다. Hey.com은 지메일과는 반대로 Archive 기능을 빼버렸다. 그들은 “인박스 제로”는 의미 없다 말했다. 폴더 3개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도메인을 등록해주는 서비스나 (eg., GoDaddy, Cafe24) PDF 편집 서비스는 아주 일부의 사람들만이 좋은 도구가 만드는 차이에 대한 열정을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도메인을 등록할 수 있게 해주는 사이트와 그럴 수 없는 사이트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코드 에디터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르다. Vim과 Emacs는 서로 본질에서 충돌할 만큼 다르기에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선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이다.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들만의 독특한 특성이다. 한쪽을 강하게 들이민다. 이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타협하는 법이 없다. 고집스러우니 얘깃거리가 된다. 철학이 마음에 든 사람들은 소프트웨어를 구매한다. 이런 특성들 덕분에 프리미엄 가격을 붙일 수도 있게 되었다.

이는 각 니치에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들이 잘 스며들 수 있게끔 돕는 선순환 구조라고도 볼 수 있겠다. 모두가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들에 열광할 필요는 없지만, 소수의 진지한 사람들은 열광해주어야만 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면서 이들 소수까지 만족시키란 불가능하다. 타협하지 않는 소프트웨어의 기능이야말로 한 분야의 마스터 작품을 만들어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5. 의도한 차이, 프리미엄.

이러한 기능들이 모이면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은 “어떻게 동작하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잡스 역시 기능들이 모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애플은 같은 종류의 제품이라도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껴지는가, 즉 “경험”에 대한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깨닫게 해준 고마운 회사다.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슬랙은 이 분야의 선구자였다. 슬랙의 창업자들은 게임을 두 번이나 창업해 두 번 다 말아먹고 피봇해 성공한 팀이었다. 분명 디자인에 대한 좋은 안목과 실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돈을 들여 외부 전문가, 즉 디자인 전문 에이전시를 고용해서 제품의 경험을 설계하게 했다. 그리고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잘 만들어진 팀 채팅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졌다.

당연히 팀 채팅에는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재밌는” 팀 채팅은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렇기에 디자인은 처음부터 슬랙의 핵심 차별 역량이었다. 이 역량을 통해 슬랙은 경쟁사들보다 무려 3배에 가까운 프리미엄 가격에 제품을 팔 수 있었다.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는 소수의 프로가 열광할 만한 기능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춤과 동시에 같은 수준의 노력을 시각적인 요소에도 할애한다. 쉐프의 칼의 손잡이는 당연히 부드럽게 이어지는 곡선이어야 하고, 칼날 역시 날카로워야 하지만 동시에 쉐프의 칼처럼 보여야만 하는 것도 분명 필요하다. 특히 “럭셔리” 상품으로서 존재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슈퍼휴먼에 대한 얘기의 절반은 가격에 대한 논쟁이다. 슈퍼휴먼의 사용료는 월 30달러인데, 지금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분명 “럭셔리 상품”의 가격대라고 볼 수 있겠다.  슈퍼휴먼의 희소성 (초대장 시스템)이 전부였다면 사실 고객은 한 달을 30달러를 내고 써보고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

슈퍼휴먼은 희소성 덕에 (hype, 혹은 거품이라고 보통 말한다) 지금껏 살아남은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슈퍼휴먼은 이메일을 많이 사용하는 파워유저들이 정말로 이메일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슈퍼휴먼이 파워유저들의 니즈를 해결해주는 이상, 유저들이 돈을 내지 않을 리가 없고, 슈퍼휴먼에 대해 말하지 않을 리가 없다.

6. 파워 기능들을 보급화 하다.

메시지를 온라인에서 여러 명이 주고 받을 수 있게 해주는 IRC(Internet Relay Chat) 기술은 나온 지 몇십 년도 더 되었다. 슬랙은 그저 IRC 기술에 보기 좋은 인터페이스와 고집스럽게 타협 않는 개선점들을 추가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정도에도 기꺼이 돈을 낸다.

지메일은 처음부터 단축키 중심이었다. 지메일을 대체하는 슈퍼휴먼이 무언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게 아니란 얘기다. 대신에 슈퍼휴먼은 단축키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인터랙션을 ‘게임화’ (gamify)했다. 덕분에 단축키와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도 슈퍼휴먼을 통해 충분히 단축키를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코드 에디터 Vim과 Emacs 얘기로 돌아가보자. 이 두 도구는 대체로 개발자들에게 유용한 기능들을 잘 숨겨 놓았다. 그래서 이들을 제대로 잘 쓰려면 사용자가 시간을 들여 공부할 필요가 있었다. 그에 비해 Sublime Text는 이런 기능들을 프로덕트의 앞단, 즉 “command palette”를 만들어 사용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디자인과 업무 문서도 마찬가지다. 이메일에 디자인, 업무 파일을 첨부해서 서로 주고받을 수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는 Figma와 Google Docs, 그리고 Notion이 협업하기에 훨씬 더 편하지 않은가. 클릭 한 번으로 수고로움을 덜 수 있으니 말이다.

포지셔널 소프트웨어의 또다른 핵심은 차별화된 기능을 더한 더 나은 디자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지셔널 소프트웨어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대신에 이전에 기존 경쟁 도구를 쓰는 파워 유저들이 주로 사용하던 핵심 기능들만 가져와서 훨씬 더 단순하고 간편하게 쓰도록 해준 것에 포인트가 있다.

그래서 포지셔널 소프트웨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주로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이다. 슬랙은 또 하나의 IRC 기반 메신저일 뿐이고, 슈퍼휴먼은 예쁜 지메일이라는 얘기다. 일리는 있다. 파보면 다 옛날 기술이고 옛날 개념이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는 모두를 파워 유저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7. 일정 부분 커스터마이징 가능하다.

소프트웨어는 다른 도구와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면서 손때를 입는 다거나 하지 않는다. 매일 쓴다고 해서 악기나 만년필처럼 손에 익거나 하지 않는다.

타협하지 않는 고집스런 소프트웨어는 애초부터 커스터마이징 할 수 없게 되어있다. 뜯어 고치는 게 가능했다면 제작자의 의도에서 벗어나 버려 사실상 타협한 소프트웨어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애플의 제품들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아예 커스터마이징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자기만의 도구”라는 느낌을 사용자들에게 안겨주기 어려울 것이다. 파워 유저들의 특징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도구를 쓰고자 하는 것인데, 모두가 같은 도구를 쓰면 이 욕구를 채울 수가 없다.

그래서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들은 일정 부분은 사용자들이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게끔 허용한다. 작게라도 말이다. 인터페이스의 테마나 플러그인, 혹은 이모티콘, 혹은 커스텀 워크플로우 등을 활용해서 사용자들이 “자기 도구”라는 느낌을 줄 수 있게 한다.

이는 또 다른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는데, 이러한 작은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사용자들은 도구에 더 큰 애착을 갖게 되고 다른 대안보다 더 우선하게 된다는 것이다. 애착은 사용자들이 남들에게 자기 도구를 자랑하게 만들고, 이는 다른 사람들도 도구를 써보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도입하기 시작하면, 제작자는 더 강력한 가격결정력을 갖는다.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다.

프리미엄 소프트웨어 세상

프로그래머들 정도나 소프트웨어를 쓰던 초창기에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사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 공부해야 그나마 좀 쓸 수 있었다. 오롯이 전문가만이 사용하던 시기였다. 시간이 지나 대중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업무를 보았다. 대중적인 툴인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로 모든 일을 처리했다.

시간이 더 지나서 이제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지 않으면 업무처리가 어려웠다. 오피스만으로는 당연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 분야에서 잘 쓸 수 있는 소수를 위한 소프트웨어 도구들이 많이 등장했다. 소수를 위한 툴이지만, 그 소수가 꼭 필요로 하는 기능을 담았다. 대중적인 소프트웨어는 (eg.,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대중을 만족시켰고, 새로운 소프트웨어들은 (eg., Airtable, Superhuman, Slack) 꼭 필요한 소수를 만족시키고 높은 가치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최고의 도구는 시간과 효율을 잘 배분하는 장인의 가치를 잘 나타낸다. 장인의 사회적 위치와 기술, 능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포지셔널 소프트웨어에도 이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는 특정 직군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도구다. 최고의 능력을 보유한 장인들이 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당신을 전문가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는 그래서 프리미엄 가격표가 붙는다. 그리고 비싼 가격을 기꺼이 낼 만하다. 지갑을 여는 사람들은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를 구매함으로써 자신들의 효율을 높이고 전문성을 나타낼 수 있는 좋은 상징을 얻는 것이다.

프리미엄 소프트웨어는 시장을 지배할 수 없다. 대중이 원하는 것과 소수의 프로가 원하는 것은 애초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는 시장 전체에 큰 영향을 준다. 가장 영향력 있는 소수가 포지셔널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