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

스타트업 진출을 위한 현실적 조언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
Seoul, Gwanghwa-mun. 2024

얼마 전, 링크드인을 통해 누군가로부터 컨설팅에서 대기업(Industry)으로, 대기업에서 창업으로, 그리고 창업에서 초기 스타트업 합류까지의 여정에 대해 알고 싶다며 커피챗을 부탁받았다.

이 친구는 대학 졸업 후 9년 동안 컨설팅에 있었고(알고 보니 대학교 동창이었다), 이제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데 관심이 생겨 나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깨달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업을 하나의 덩어리로 본다는 것이다. 밖에서는 다 비슷해 보인다. 다 잘하는 것 같고, 다 젊어 보이고, 다 역동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면 회사마다 천차만별이다.

또 한 가지 깨달은 점은,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관심은 있지만 제대로 된 정보가 부족하여 어떻게 하면 스타트업의 세계로 Break-in할 수 있는지 잘 몰라서 망설이거나 시간을 지체한다는 점이었다.

어떤 조직이든 밖에서 볼 때와 안에서 보는 것은 다르다. 뭐든 착착 돌아갈 것만 같은 대기업도 막상 들어와서 보니 허점 투성이고, 비효율의 극한을 경험하게 된다. 포춘 1대 기업인 월마트(Walmart — 창업 전에 전략팀에서 근무했었다)도 마찬가지였다. 이래도 일이 돌아가나 싶은 순간들이 많다.

그런 반면, 같은 회사 안에서도 팀마다 레벨이 다르다. 어떤 팀은 정말 상상한 대로 일도 잘하고 사람들도 훌륭한 경우도 있다. 그에 비해 바로 옆 팀은 무능한 상사 아래 업무만 밀려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스타트업을 찾아낼 수 있을까? 사실 까보기 전에는 100%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최대한 사전에 ‘red flag’를 들어 올리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합류할 만한 좋은 이유는 밖에서 확신하기 어렵지만, 합류하면 안 될 이유는 비교적 찾기 쉬운 편이다 (via negativa).

이런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VC의 투자 방식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들도 스타트업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판단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기준은 수많은 스타트업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이 보이고, 그 패턴이 곧 기준이 된다.

말하자면, VC는 돈으로 투자하지만, 우리는 몸과 시간으로 투자하는 셈이다. 게임 머니의 종류만 다를 뿐, 같은 게임이다.

그러니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해야 한다. 특별한 어젠다 없이 그냥 어떤 일을 하는지, 요즘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어떤 프로젝트인지, 어떤 점이 보람 있고, 어떤 점이 어려운지,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해볼지, 현재 커리어에 만족하는지 등을 물어보라.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타트업 세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정보는 빠르게 돌며, 빠르게 소비된다. 좋은 스타트업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드러낼 방법도 필요하다. 좀 더 정확하게는, 좋은 스타트업이 나를 찾기 위해서는 나와 연결된 사람이 많을수록 유리한 것 같다.

지식 노동자는 결국 자신이 보유한 지식으로 가치를 증명한다. 글쓰기는 그 지식과 생각을 정리해서 세상에 출고하는 일이다. 나도 10년째 글을 쓰고 있다. 뉴스레터와 블로그, 그리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많은 글을 써왔다. 내가 창업한 회사에서도 마케팅을 위해 거의 매일같이 글을 썼다. 내 글 덕분에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중에는 비즈니스를 함께 하게 되거나 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10년간 글을 쓰다 보니, 고객 미팅이나 네트워킹 자리에서 종종 내 글을 읽어본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는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아이스브레이커 역할을 해준다. 글은 사람들을 통해 퍼져 나가고, 그중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회사가 있을 수도 있다. 아직 글을 쓰고 있지 않다면, 뉴스레터나 블로그, 링크드인부터 시작해 보라.

그런데 스타트업 진출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대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컨설팅이나 뱅킹, 대기업에 오래 다니다 보면 "스타트업은 업무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라고 미뤄 짐작하는 것이다. 실상은 정반대다. 스타트업이 훨씬 어렵다. 누가 일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연봉은 비슷하거나 작은 데다가, 내가 내는 결과가 빠르게 드러나는 환경이기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을 선택할 이유가 있다면, 성장 가능성과 네트워크, 그리고 무엇보다 태도의 변화 때문이다. 대기업 사람들은 같은 직종 사람들과만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컨설팅도, 뱅킹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직종과 산업에 걸쳐 친구를 만든다.

더 중요한 것은 태도의 변화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이 태도와 자신감이다. 창업하기 전 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창업을 하면서 필요에 의해 마케팅과 세일즈를 공부하고, 제품을 만들고 디자인하는 일을 배워왔다. 몇 년이 지나니 프로덕트와 마케팅, 그리고 GTM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GTM을 돕는 CRM 소프트웨어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경험이 부족하거나 없는 분야에 뛰어들어야 할 때가 온다. 이때 지레 겁먹고 발을 빼기보다는 "한번 해보자"는 의지가 있어야 정면 돌파할 수 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 이런 의지를 자연스럽게 갖추게 된다. 어떤 분야에 뛰어들든 지식 노동의 본질은 비슷하다. "한번 해보자"는 마음가짐 자체가 스타트업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이 아닐까.

그렇다면 실제로 스타트업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능하다면, 우선 프리랜스 계약 업무부터 시작해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풀타임으로 바로 뛰어들기보다는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그 회사와 팀의 실제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이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럼 프로젝트는 어떻게 구할까? 관심 있는 스타트업에 콜드 메일을 보내보라. 내 경험상 먼저 연락 온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우는 잘 못 봤다. 어느 정도 경험과 경력이 있고(학생의 경우 활동이나 학교 이름 등을 보고 판단한다), 왜 우리 회사와 같이 일해보고 싶은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고 설득력 있다면 연락을 줄 것이다. 어느 직무든 간에 스타트업은 늘 인재난을 겪기 때문이다.

추가로 해볼 것은 다시 글쓰기로 돌아가서, 글을 통해 나의 생각을 알리는 것이다. 종종 먼저 프리랜스 제안이 오기도 한다.

좋은 스타트업을 찾아서 드디어 면접이 잡혔다면, 면접 과정에서는 이 포지션이 왜 생겼는지 그 “이유”를 파악해 보라. 모든 채용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채용 담당자가 이번 채용을 통해 풀고자 하는 핵심 문제와 OKR(Objectives, Key Results)을 이해하고, 이미 그곳에서 일하는 것처럼 구체적인 실무 수준의 질문을 던져라. 나 자신을 그들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으로 포지셔닝하고, 다른 이해관계자들과도 연결되어 맥락을 파악해 보라.

커피챗을 마치며 그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런 조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동시에 내 자신을 드러낼 방법을 지금 당장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