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

삶에 정답은 없지만, 어디에 나의 삶을 앵커(anchor)하고 있는지는 내가 평소에 어떤 푯대를 향해 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면 쉽게 나온다.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
2025년 아디스아바바, 에티오피아.

나만의 월든(Walden) 만들기

《월든》은 미국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혼자 살았던 경험을 적은 수필이다. 《월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문명의 발달과 사회의 번영으로 인한 피로감을 느끼고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근교에 있는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약 2년 동안 생활하면서 겪은 일들,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한 글이다.

우리는 너무 바쁘고, 쫓기며 살아가곤 한다. 수많은 자극과 정보에 노출되어 있어서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하기 어렵다. 바쁘고 빠르게 바뀌는 주변 환경은 사람을 쉽게 지치도록 만든다. 도시는 소음과 공해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표정을 거의 짓지 않으며, 스마트폰과 모니터만 쳐다보고 산다.

가끔은 아무런 자극 없이 편하게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필요하다.

월든 같은 호숫가에 집을 갖기란 너무 어려우니, 나만의 '월든'을 만들면 어떨까.

내가 잘 아는 집 근처 호텔도 좋고, 동네 도서관, 미술관도 좋다. 나만 알고 있는 산책로도 훌륭한 월든이 되어 준다.

휴가를 내거나 며칠에 걸쳐 쉬는 것이 어렵다면, 하루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집 앞에 미니 월든이 있다. 시카고 도심에는 풀이나 나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더 특별하다. 일하다가 좀 걷고 싶으면 호수를 끼고 걸을 수 있는 이 공간을 찾는다.

일상을 리뷰하기

일상을 살다 보면 가끔 내가 잘 살고 있나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이대로 가는 게 잘하는 건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정말 없는지, 챙겨야 할 것들을 잘 챙기고 있는지 확신이 잘 서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러한 의심은 한국 사회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더 잘 느끼는 마음인 것 같다.

내가 경험한 한국 사회는 뿌리 깊은 곳에 인생에 대한 ‘빌드 트리(build tree)’가 고정관념처럼 박혀 있었다.

10대엔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
20대엔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전문직을 위한 조건을 갖추는 것.
30대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을 소유하는 것.
40대엔 커리어의 절정을 이룩하고 고점에 닿는 것.
50대엔 아이 교육을 위해 유학을 보내거나 사립학교에 입학시키는 것.
60대엔 아이를 좋은 대학교에 입학시키는 것.

이게 맞을까 싶다. 삶에 정답은 없지만, 어디에 나의 삶을 앵커(anchor)하고 있는지는 내가 평소에 어떤 푯대를 향해 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면 쉽게 나온다.

가끔씩은 내가 잘 살고 있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거창하게 할 필요도 없다. 휴일에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 한 모금하면서, 나의 직업과 개인적인 경제, 가족과 친구를 비롯한 인간관계, 나의 일상적인 루틴, 건강, 식습관,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 등을 점검하고 되돌아보는 것이다.

컴퓨터도 좋지만, 종이와 펜으로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종이에 내 삶의 역학을 그리다 보면 생각해 보지 않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고, 선형적으로만 생각했던 내 삶 이면에 숨겨져 있던 사각지대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Enough

소비와 물건을 줄이고 있다. 물건이 주는 즐거움이 커서 극강의 미니멀리스트는 되기 어렵지만, 뭐든 적당한 삶을 지향한다. 지나서 후회가 드는 소비는 의미가 없거나 적은 소비다.

나의 경우, 결국 몇 번 손이 가지 않아 안 입게 되는 옷, 얼마 못 가 쓸 수 없게 되어 버린 생필품, 사용처(use case)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서 비슷한 물건을 또 사게 되는 경우 등이 후회가 되는 소비인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오랫동안 쓸 물건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좋은 것,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산다.

특히 사용 빈도가 높은 품목은 가장 좋은 것을 사는 게 결국 남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런 것들 중에는 면도기, 손비누, 마우스, 키보드 등이 있는데, 모두 돈 아낀다고 저렴한 것 사서 쓰다가 결국 고장 나버리거나 싫증이 나서 돈을 더 쓰게 되곤 한다.

구매를 하기 전에 충분한 공부도 필수다. 그러나 이 공부는 강박에 의한 공부라기보다는, 물건과 사용처에 대한 연구가 주는 즐거움에 의한 공부이다.

또, 가장 좋은 것이 가장 비싸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런 편이긴 하다.

미술관에 등록하기

작년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 회원 등록을 한 것이다. 1년에 대략 5번만 가면 흑자 ROI를 달성할 것이라는 다소 삭막한 생각으로 등록하기는 했지만, 등록을 하고 나서 올해 몇 번 입장했는가 세어보니 9번 정도나 되었다(산책하다가 화장실 가야 해서 잠깐 들어간 것까지 하면 10번이다).

미술관은 매우 훌륭한 공간이다. 앞서서 얘기한 훌륭한 ‘월든’이 되어 준다. 일상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들은 우리 눈에 익숙하다. 미술관은 특수한 목적을 갖는 공간으로서 우리에게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보는 <Nighthawks>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이다) 시카고 미술관 미국 예술관에 직접 방문해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바쁘고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것만으로 미술관의 특수한 목적은 내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감상하는 데 장소는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술관에 가면 일단 이곳의 작품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들어가게 된다. 감상을 위한 최적의 맥락이 제공되는 것이다.”
— 윤광준

작품뿐만 아니라, 미술관은 정말 좋은 건축물이다.

시카고 미술관의 모던 윙(Modern Wing)의 경우, 세계적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디자인한 건축물이다. 가끔 미술 작품은 대충 훑어보고, 모던 윙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무지개 햇빛을 쬐러 가기도 한다.

매일 운동하기

대개는 주 3~4회 운동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 이상은 굳이 안 해도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효율과 가성비를 따질 때만 그렇다.

운동을 3개월 정도 거의 매일 해보니, 매일 하는 것을 지키는 편이 주 3-4회 운동을 지키는 것보다 더 쉽다. 매일 하면 더 빨리, 더 쉽게 습관이 되고 루틴이 된다. 주3-4회보다 덜 효율적이지만, 장기적으로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싶다면 매일 하는 편이 더 쉽다. 오히려 매일 하지 않는 게 더 지키기 어려운 습관인 것 같다.

충분히 자고, 건강히 먹고, 산책하고, 하루에 1시간 정도만 운동한다면 매일 해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