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변천사
나는 업무환경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학교 다닐 때도 도서관이나 카페는 신중하게 선택했고 공간 안에 들어서서는 자리 선택도 굉장히 신중하게 골랐다. 일할 때도 그렇다. 컨설팅을 하다보니 아무데나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핫스팟을 연결해서 일할 때가 많은데 (…), 그런 부득이한 상황을 빼고, 집에서 일할 때나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최대한 깔끔한 환경을 만들고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는 일 등 ‘생각’하는 데 집중할 수있도록 하려고 한다.
이번에 집에 듀얼모니터 및 VESA 스탠드를 들여왔다. 원래는 회사 사무실에서, 특히 큼직큼직한 모니터가 필요한 직군 (ex. 트레이더들, 엔지니어들, 디자이너들)에서 많이 쓰이는 형태이긴 한데, 맥북에어 13인치 스크린 하나로 뭘 하려고 하면 눈이 빠질 것 같았다. 집에는 이미 27인치 모니터가 있었지만 mountable이 아닌지라 작은 책상 공간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들여와 설치해보니 확실히 편하다!!! 왜 진작 투자하지 않았는지…
설치를 끝내고 하루 정도 써보다가 사진을 찍었는데, 문득 예전 내가 쓰던 책상은 어땠는지 궁금해졌다.
구글포토의 위엄. ‘책상’ 을 검색하니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던 책상 사진이란 사진은 다 리턴했다. 순다형 짱
일단 내 인턴사원 시절부터. 2015년 여름에 파수닷컴에서 기획인턴으로 일했었다. 참 책상이 더러워보이는데, 맨날 이렇지는 않았다. 저 때는 맡은 프로젝트를 좀 겁내 잘해야겠다는 압박감아닌 압박감이 있어서… 그래도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면 깨끗하게 정리하곤 했다. 그 다음 날 다시 와서 써야하는데 더러우면 일하고 싶지 않을테니까. 회사에서는 7시리즈 삼성 탱크랩탑을 줬지만 호기롭게 개인 맥북을 들고와 일했다. 아이러니한게 파수닷컴은 문서암호화 및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다 (ㅋㅋㅋ). 지금 생각하면 윗 분들이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매일 오후 3시마다 맛있는 간식이 나오고, 매주 월요일 전직원이 모이는 타운홀 미팅에, 30분 정도 팀 커피타임에, 90분짜리 점심시간에, 자유로운 퇴근 문화만 놓고 봐도 지금 다니고 있는 IBM 보다 이런 소소한 복지는 훨씬 좋았다.
2014년 학교 휴학하고 창업 했을 때 쓰던 사무실에서. 랩탑에 보이는 ‘What makes you different makes us different’가 우리 회사 핵심 비전이자 역량이었다. 망했지만 바로 옆에 커피숍이 있어 체리코크를 많이 사먹었다. 학교중고마켓에서 업어온 HP모니터 하나 두고 sales forecast 모델 만들다가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열심히 했었는 데 말이지. 얻은 게 있다면 두 가지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는 것과 아직까지도 처음 만난 사람과 재밌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복학하고, 인턴 끝내고, 방 두개짜리 아파트에서 사람 6~7명 살 때. 구석에 꾸역꾸역 책상을 쑤셔넣고 셋업했다. 지금 저기 사진에 있는 시계중 하나만 남기고 다 팔았다. 저땐 공부보다 저런게 더 관심있었고 뭔가 넓고 얕은 지식에 이끌렸다. 저때부터 넓고 얕은 지식만을 탐방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
그 다음 학기 책상. 아이러니 하게 이 때 공부 진짜 열심히 했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점 받아봤다), 책상 우측에 보면 엑스박스가 있다 ㅋㅋㅋㅋ. 게임도 나름 많이 했다. 옛날 헤일로3 추억을 회상하면서 말이야.
추가 사진. 이건 좀 공부하는 학생 답다. 가운데 있었던 건 한 3일 쓰고 리턴했던 Dell XPS 13인치 랩탑. 저거 리턴하고 레노보 띵크패드 X1을 샀었는데 그것도 2달 쓰고 한국 가져와서 팔았다. 맥북은 2015년 2월에 사서 아직까지도 잘 쓰고 있는데 말이야. 하 X270사고 싶다 이 때 식욕도 없고 그냥 미친듯이 공부만 했었다. 그래도 가끔 배가 고프면 책상에 보이는 오렌지맛 비타민을 먹었다. 한 주먹씩. 선물해준 윤나 고맙
한국에서 쓴 책상. 아빠를 졸라 상명에 있는 이케아 한국에 가서 사왔었다. 지금은 아마 엄마 옷장으로 쓰일거야.
Processed with VSCO with c8 preset
올해 IBM에서 일을 시작하고 원격근무를 자주 하게 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모니터는 학생때부터 쓰던 27인치 아수스 모니터. 쓰다보니 공간이 협소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학교 다닐 때 쓰던 책상은 버리고 이사하면서 작은 책상을 하나 샀다). 게다가 회사업무는 회사에서 준 맥북에어로 해야 하니 수시로 HDMI선을 꽂았다 뺐다 하기 귀찮기도 해서… 듀얼 모니터를 사고 상시에는 개인 랩탑에다가 연결해놓고 쓰다가 업무 할 때 하나만 연결해서 쓸 기발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형태가 탄생하게 되었다. 스탠드가 사라지니 공간을 100%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모니터들도 상하좌우 앞으로 뒤로 움직일 수 있어서 일하기 너무 편하다. 어디 일하기에만 편하랴. 영화 볼때도 넘나 편하고, 글 쓸 때도 편하고, 그냥 다 편하다. 트레이더가 아니라고 해도 참고로 나는 주식도 하긴한다 듀얼모니터+스탠드는 투자할 가치가 있다.
언제쯤 이런 포스를 내뿜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