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주 일정 방문기 – 여기가… 패딩의 나라입니까?
극적으로 휴가가 성사(?)되어 11월 말에 한국에 2주 동안 다녀올 수 있었다. 짧다면 짧게 있는 것만큼 일정을 다소 빡빡하게 잡아서 그런지 오히려 되게 신이 나고 재미있었다. 피로가 누적되어 시카고에 돌아오니 미친 듯이 졸리고 피곤한 것은 안비밀.
Humble Experience
감사하게도 내 글을 읽고 연락해주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셔서, 퍼블리 프로젝트를 통해 티타임에서 함께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어떻게 어떻게 알게 된 분들이 계셔서 그리고 직장에 자리 잡아 재밌는 일들을 하는 UIUC 선후배와 동기들을 만나면서 참 다양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거워하고 나누는 대화를 즐기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이번 일정동안 만나는 분들과의 대화가 참 재미있었다. 컨설팅 이야기부터, 리테일/소비재 이야기, 스타트업 이야기, 브랜드 이야기 등 참 다양한 얘기를 했다.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정말 세상에는 재야의 숨은 고수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하여 세상 맛 좀 본 내가 감히 평가할 수 있는 분들이 아니다. 그저 같이 숨 쉬고 대화하면서 나는 나대로, 또 그분은 그분대로 얻어갈 takeaway가 존재한다는 점에 감사할 뿐. 속해 있는 업계와 산업에 대한 말씀을 듣다 보면 “내가 헬파이어 쏘는 분 앞에서 다람쥐를 잡고 있다”라는 느낌을 좀 받았다.
컨설팅의 단점이라면 너무 다양한 프로젝트와 산업에서 놀다 보면 넓고 얕은 업력을 얻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컨설턴트로서는 최장 점이지만, 평생 컨설팅만 할 것 아니면 그리 좋은 장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더 노력하고, 더 배우고, 또 더 자주 실행해서 그냥 말로만 설명하고 제안하는 컨설턴트가 아닌 발로 굴러본 컨설턴트가 되어야겠다.
현재 내 최고 관심사는 리테일이다. 그중에서도 퓨어플레이어들의 오프라인 점령, 옴니채널, 오프라인 플레이어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이커머스는 특히 내 관심사. 내 현재 클라이언트도 식품유통기업이다. 내가 IBM에 있으면서 가장 크게 얻는 부분은 (또 성장하는 부분은) 리테일/소비재 산업에 관심을 갖고 ‘업력’을 얻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신세계그룹에 큰 관심이 간다. 정 부회장님이 이 글을 보실 리는 만무하겠지만 사랑한다고 전해드리고 싶다. 다만 ‘소비자를 놀게 하자’, ‘경험하게 하자’, ‘체류시간을 늘리자’, ‘고객중심’ 등의 value-added strategy는 그에 걸맞은 cost-cutting strategy가 존재해야 한다. 유통업이 힘든 이유는 돈이 많이 들어서다. 스타필드 고양, 하남은 부동산 투자로서의 가치가 아직은 더 커 보인다. 신세계그룹은 옴니채널로서의 행보가 매우 중요할 것으로 판단. 지금은 사실 좀 따로 노는 것 같다. 한국 이커머스만의 Vibe 라 하면 할 말 없겠지만, 미국인이 봤을 때 ssg.com은 그렇게 사용하기 편한 사이트는 아니다. 걱정할 것은 없다. 아직 옴니채널 제대로 하는 회사들 미국에서도 몇 개 안된다. 가치 창출을 위해 일단 돈을 투자했으니 영업이익률은 백엔드에서 높여야 한다. 신세계그룹의 행보가 곧 내 공부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Publy
2주간 일정 대부분을 이분들과 함께했다. 오프라인 행사 미팅과 프로젝트 리포트 편집 미팅 등으로 사무실을 방문하기도 했고 오프라인 행사도 이틀, 저자 모임도 하루 다녀왔다. 글도 썼다. 버버리 글은 한국 일정동안 탄생한 글. 강남역 빈브라더스의 무제한 커피 서비스가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커피를 하루에 6잔 마시니 시차 적응이 단번에 되기도 했다.
나는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고 한다.
퍼블리와 퍼블리 팀은 힙스터들이다. 일단 생각부터가 멋지다. 조선 땅에서 글을 돈을 받고 판다니. 사람들부터 돞하지 않으면 이런 발상 못 낸다. 재밌는 분들. 심지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이런 모델은 없다. 돞한 건 다 가져와서 합쳐놨다. 크라우드 펀딩, 넥플릭스식 컨텐츠 브라우징, 미디엄식 컨텐츠 레이아웃 등… 잘만 하면 한국 컨텐츠 시장의 마일스톤이 될 수도.
퍼블리 팀 사람들도 짧게나마 재밌는 이야기를 좀 나눠봤다. 역시나 힙하신 분들. 내가 쓰는 이야기가 브랜드와 관련된 이야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분들의 관심사도 좀 궁금했었는데, 역시나 관심사가 돞하였다. 퍼블리 이즈 돞.
스타트업으로서의 행보도 지켜볼 만하다. 내가 봤을 땐 카카오 엑싯이 가장 feasible 한 것 같다. 브런치 서비스와의 통합도 기대해볼 만할 것 같고, 아니면 독립기업으로서 카카오 strategic investment로도 기대가 가능한 부분. 카카오도 컨텐츠 중심 전략을 핵심으로 보고 있고. 모든 면에서 제일 잘 어울린다. 이제 시리즈A 클로즈 했으니 갈 길은 멀다. 아직 market validation에 관한 판단은 이르다. 더 성장해야 알듯.
소비강국 남조선
네슬레의 블루보틀이 한국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근데 나는 뉴욕 블루보틀보다 강남역 빈브라더스에서의 경험이 훨씬 좋았다.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워낙 힙하고 핫하니 블루보틀 이름 덕으로 처음엔 성공 좀 하겠지만, 한국 소비자들…. 꽤 까다롭다. 빈브라더스 만큼의 경험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한국은 또 chaebol의 나라 아닌가. 블루보틀 잘되는 거 보면 너도나도 하나씩 만든다. 삼립도 하나 한다. 상스럽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거 비즈니스적으로는 엄청난 거다. 그 자본력 이길 수 있는 회사 몇 개 안된다. 그래서 빈브라더스가 난 더 멋져 보인다. 힙하니까.
한국시장의 가능성과 재미있는 면모. 라스트 마일 강국 코리아.
땅덩어리 좁고, 정서가 8282다보니 자연스럽게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가 수준급이다. UPS, Fedex 같은 회사 임원님들 한국 택배 아저씨가 고객한테 직접 연락하고 문자 넣어주고 배달해주고 이 모든 걸 2500~5000원에 한다는 거 보면 놀라서 나자빠질 수도 있겠다. 언제는 건대에서 길을 걸어가는데 소주를 가득 실은 트럭이 골목길 사이사이로 지나가더라. 한국 소주 딜리버리 네트워크 보면 기절할 분들 미국에 많이 계신다. 골목길 로지스틱스는 아무나 못 하는 거다. 메쉬코리아가 참 기대되는 부분이다. 이 정도 기술력이면 미국 초대형 3PL들도 앞다투어 사고 싶어 할 수준이다. UPS-로젠택배 딜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한데, 바로 이런 면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이야…..
출국 전날에 스타필드 하남점을 견학하고 왔다. 사람이 엄청 많았다. 미국의 몰 개념과 같은 맥락인데, 훨씬 잘해놓았다. 노린 건 grocery부터 럭셔리 굿즈 쇼핑까지 한 공간에서 하라는 건데 그러기엔 공간도 너무 크고, 소비자의 인식 discrepancy가 큰 것 같다. 그냥 내 주관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마트에서 장보고 3층으로 올라가 아크네 코트를 한 벌 사 입는 걸 동시에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지는 모르겠다. 공간이 큰 것보다 알찬 구성이 더 핵심으로 보인다.
P.S.
여기가..패딩의 나라입니까?
한국은 참 신기한 나라다. 벵거 형도 경기 아니면 안 입을 롱패딩을 요샌 어른아이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입고 다니신다. 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신기해서다. 어떻게 이게 유행이 탔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나 빨리 유행이 번졌는지 궁금하다. 지인이 롯데백화점에서 근무하는데, 평창패딩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아이폰만큼이나 줄 선다고 한다. 한국 소비자 심리 연구는 박사논문감이다.
재밌는 2주였다. 다음에 한국 방문 할 때는 좀 더 여유를 갖고 한국 시장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한다. 물론 다음 방문 때에는 이번에 만났던 사람들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