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하는 삶

가장 약한 펜은 가장 강력한 기억을 이긴다.

메모하는 삶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 론 콘웨이(Ron Conway)를 실물로 처음 본 것은 올해 여름 Y Combinator 오피스에서 열린 네트워킹 행사에서였다.

Ron Conway와 그의 리걸패드. 실리콘밸리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 받는다. Photo Credit: Paul Graham

그 자리에는 폴 그래햄(Paul Graham)과 마이클 사이벨(Michael Seibel)을 포함한 YC 파트너들, 그리고 S22 배치에 참여하는 스타트업의 창업자들도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

론 콘웨이는 구글, 에어비앤비, 슬랙, 도어대시, 깃헙 등 시대를 정의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한 실리콘밸리 최고의 투자자이다. 이미 실리콘밸리에서 론 콘웨이보다 성공한 투자자는 없을 만큼 성공한 그이지만 그날 행사에서 그는 창업자의 말을 하나도 빠트리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노란색 리걸 패드(legal pad)에 글자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론 콘웨이와 메모 관련해서 또 재밌는 일화가 하나 더 있다.

메타(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가 어느 한 실리콘밸리 행사에서 젊은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젊은 창업가들도 있었지만 맨 앞자리에는 젊지 않은 사람 두 명도 있었는데, 구글에 투자한 Kleiner Perkins의 존 도어(John Doerr)와 론 콘웨이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수백 명의 젊은 창업가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던 이유는 그들의 머리색이 회색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두 사람이 눈에 띄었던 이유는 그날 주커버그의 연설을 들었던 수백 명의 사람 중 두 사람만이 유일하게 노트에 적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공간에서 주커버그 다음으로 성공한 두 사람만이 유일하게 주커버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메모했다는 재밌는 이야기다.

가장 약한 펜은 가장 강력한 기억을 이긴다.

타이탄의 도구들(Tools of Titan)과 나는 4시간만 일한다(Four Hour Workweek) 의 저자 팀 페리스(Tim Ferris)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광적으로 메모하는 습관을) 정신병(hypergraphia)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가장 약한 펜이 가장 강력한 기억을 이긴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메모하는 습관은,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심플하지만, 효율적인 메모 습관을 갖고 있으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 10분이내로 예전에 읽었던 책을 복습할 수 있다.
  • 대화, 미팅, 컨퍼런스 및 강연 등처럼 실시간으로 얻는 정보를 더욱더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
  • 시시각각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 둘 수 있다.
  • 메모하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심플한 메모 방법

우선 리걸 패드(legal pad)와 같이 크게 포맷의 제약을 받지 않는 노트를 언제 어디서나 들고 다니면서, 메모할 순간에 메모하면 된다.

며칠 전에 한국의 커리어테크 스타트업 PUBLY 박소령 CEO와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박소령 CEO는 언제나 미니(mini) 사이즈의 리걸 패드와 펜 한 자루를 들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 상대방으로부터 얻는 정보들을 적어두곤 한다.

나는 원래는 좀 더 큰 노트를 들고 다녔지만, 박소령 CEO을 따라서 손에 좀 더 잘 잡히고 들고 다니기 좋은 작은 크기의 리걸 패드를 들고 다닌다.

리걸 패드를 활용하는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은 누군가를 만나거나 할 때, 새로운 페이지를 펼치고, 패드의 1/3쯤에 줄을 그어 세로로 나눈다. 미팅하거나 강연을 들으면서 메모할 내용은 오른쪽 2/3에 적고, 왼쪽 1/3에는 궁금한 것들을 적는다.

정리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메모를 적더라도 내 머릿속에 인사이트가 남지 않으면, 의미가 적다. 메모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메모한 것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메모한 것들을 보면서, 남겨야 하는 것들과 일단은 (머릿속에서) 내보내도 될 것들을 분류하고, 남겨야 하는 것들을 하나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정리하고 저장하는 일인 것이다.

나는 1~2주에 한 번, 손으로 쓴 노트들을 돌아보면서 내 롬(Roam Research)로 옮겨서 정리, 저장한다. 그리고 롬에서 정리한 노트들을 기반으로 바로 비즈니스에 적용해보거나, 글을 쓰는 과정을 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