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쿠사츠': 언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모쿠사츠(もくさつ), 잘못 사용한 단어 하나가 부른 참사

'모쿠사츠': 언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잘못 사용한 단어 하나가 부른 참사

1945년 7월 26일 세계 2차대전 당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 영국의 총리 처칠, 중국의 장제스 등 연합국 지도자들은 '포츠담 선언'을 통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했다. 이에 일본의 당시 총리 스즈키 칸타로는 '모쿠사츠'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데, 모쿠사츠(もくさつ, mokusatsu)라는 표현은 서구권 언어로 직역할 수 있는 마땅한 표현이 없는 표현으로, '침묵'과 '묵살' 그 중간 어디엔가 있는 표현이다.

아마 스즈키 총리는 당시 일본 내부에서도 무조건 항복이 지배적인 여론이었던 것으로 보아 '묵살'보다는 정치인들이 잘하는 '침묵한다'는 표현으로 (입장 표명을 유보한다-정도로) 썼을 테지만, 모쿠사츠는 일본 언론의 오역으로 연합국 지도자들에게 '묵살한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미국 언론에서는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무시했다"로 기사를 쓰게 되었다.

포츠담 선언은 연합국의 최후통첩이었다. 일본 정부가 포츠담 선언을 무시했다고 여긴 연합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로 한다.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방법이 사용하는 언어의 문법과 체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언어적 상대성(linguistic relativity)에 기반한 이론이다.

"인간은 객관적 세계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고 보통 이해하는 것처럼 사회활동의 세계 속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표현수단이 되는 특정한 언어에서도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 사람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현실에 적응할 수 있고 언어는 의사전달이나 사고의 반영의 특정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우연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사실인즉 현실 세계는 상당한 정도로 그 집단의 언어습관 기반 위에 형성이 된다. ... 우리의 공동체의 언어습관이 해석에 대한 어떤 선택의 경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처럼 주로 보고 듣고 아니면 경험을 한다."

– 에드워드 사피어(Edward Sapir), 1929년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로버트 레비(Robert Levy)의 저서 "타히티인들"은 타히티섬의 원주민들의 자살률이 이상할 만큼 높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자살률과 언어 체계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기록한다.

레비 교수는 26개월 동안 원주민들을 관찰하면서 원주민들의 언어 체계에는 '슬픔'과 '죄책감'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레비는 이를 저인지(hypocognition) - 타히티인들에게는 슬픔과 죄책감을 머릿속에서 처리할 수 있는 마땅한 프레임(frame)이 결여되어 있기에 자살에 이르게 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타히티 원주민들의 사례처럼 우리의 세계관과 사고방식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체계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영어나 스페인어 등을 사용하는 서양 국가에서는 주장할 때, "I think" 로 시작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한국어나 일본어 등을 사용하는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로 생각해" 등으로 주장을 전달하는 경우가 단언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 이렇게 다른 표현을 사용하다 보니 동양에서는 남을 배려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중시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고, 서양에서는 나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언어가 사고를 규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언어 체계를 계속해서 개발하고 우리가 선택하는 단어의 양과 질도 개선해야 한다.

우리가 언어로부터 받는 심리적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사피어-워프 가설이 '가설'인 만큼 정답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겠지만, 실제로 우리는 언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진심을 알더라도, 한가지 잘못된 표현에 의해 좋았던 사이가 틀어지는 것이 인간의 관계이다. 심지어는 후속 해명을 통해 의도를 이해하고 나서도, 공격받은 (정확히는, 공격받았다고 느끼는) 인간의 심리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스즈키 총리의 '모쿠사츠' 표현이 부른 참사는 우리가 평소 가족, 지인, 동료, 그리고 대중과 소통할 때 단어 하나하나 신경 써서 선택해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여기서 중요한 heuristic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언어 공부를 계속해야 함은 효율적이고 풍부한 언어 체계를 활용해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히로시마 원자폭탄과 같은 big fat tail risk를 피하기 위함이다. 말실수는 주워 담을 수 없고, 잘못된 단어 선택이 우리 삶과 비즈니스에 가하는 데미지는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