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스킨 (Moleskine) 노트

몰스킨 (Moleskine) 노트

공책에 무언가를 쓴지는 5년이 되었고 다 쓴 공책을 버리지 않고 모은 지는 2년이 됐다. 2년간 4권을 거쳤다. 내게는 깊은 의미가 있는 기록들이 되었다.새해가  되면 새로운 공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어쩌다 보니 때마침 원래 갖고 있던 몰스킨 노트를 다 쓰게 되어 새 몰스킨을  구매했다. 몰스킨 닷컴을 둘러보다가 한정판으로 가죽을 입힌 공책을 판매하길래 (원래 몰스킨의 표지는 가짜 가죽으로 만든다)  $39.95에 구매했다. 적당한 크기에 마감처리도 튼튼하게 잘 되어 있고, 몰스킨이 가진 상징적 의미도 있다. 사실 기록만을 하기  위해선 종이를 묶고 다녀도 되지 않은가. 몰스킨을 구매하는 것에는 “나 아날로그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를 나타내고 싶은  욕구도 있는 것 같다.나는 이것저것 생각이 나면 그대로 포스트잇이나 공책에 적곤 한다. 혹시나 공책을 갖고 나오지 않았을 때는 에버노트를  활용하곤 한다. 그때그때 메모하지 않으면 그 귀한 아이디어는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거나 왜곡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아이디어가 하나둘  모여 글이 되고 프로젝트가 되었다. 나도 참 생각이 많은 사람인게, 정말 별생각이 다 든다. ‘내가 이런 생각도 했었지’라며  기억을 되짚어보는 것은 내가 공책과 포스트잇에 메모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나만의 취미다.

몰스킨 노트를 이용해 아이디어 구상도 자주하는 편이다.갑자기 생각나는 아이디어나 메모 말고도 나는 다양한 종류의 글을 내 몰스킨 노트에 적는다. 설교를 요약하여 적기도 하고,  회사 컨퍼런스 콜 하는 동안 업무 지시 사항도 적으며 매일 내가 해야 할 일은 목록화해서 적는다. 내 꿈을 적을 때도 있고,  기도 제목을 적을 때도 있으며, 내 감정을 글로 표현할 때도 있다. 그래서 사실 남에게 보여주기 좀 부끄러운 내용이 많다.

설교노트.

가방에 넣어서 다니기 편하면서도, 몰스킨만의 멋이 있다. 그레인 (grain) 가죽으로 만든 표지와 (오리지널 몰스킨의  표지는 검정의 방수포로 만들어졌다) 예쁜 글씨로 적고 싶게 만드는 아이보리색의 종이, 딱 봐도 몰스킨임을 알 수 있는 클래식한  디자인, 여기저기 부딪혀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어진 둥근 모서리 등 내 노트는 참 잘 만들어진 노트다. 고무줄 밴드를  당겨 노트를 열고 종이를 넘기다 보면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든다. 무언가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싶고 무언가 더 깊게 생각하고  싶어진다.


아직 씌어지지 않은 책

디지털  세상에서 여전히 펜과 공책을 들고 다니는 이유는, 디지털이 해결할 수 없는 종이만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들이고 터치나  클릭보다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사용할 수 있는 종이엔 단순히 메모하는 행위를 넘어선 깊은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기록함이 즐거운 이유는 그날의 생각과 기억을 온전히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쓰면서 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도 뱉기  전에 생각해야 하듯 생각도 마무리 지어 머릿속에 넣기 전에 각진 곳을 다듬고, 생긴 먼지를 불어 없애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생각의 가치는 실행할 때 실현된다. 실행의 첫 번째는 기록하는 것이다. 공책을 들고 다닌 지는 5년이 됐다. 모으기 시작한  지는 2년 됐다. 그동안 많은 일을 해왔고 겪어왔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몰스킨 브랜드

사실  몰스킨이란 브랜드는 알려진 것처럼 오래된 브랜드는 아니다. 헤밍웨이나 피카소 역시 몰스킨 노트를 쓴 것으로 잘 알려졌지만,  사실은 몰스킨 노트와 같은 방식으로 (검정색의 방수포 표지 등) 만들어진 노트를 쓴 것이다. 몰스킨의 창업자 세브레곤디는 영국의  작가 채트윈이 그의 수필 <송라인>에서 파리 방문 중 우연히 구매한 카르네 몰스킨 (carnets moleskine)  노트가 좋아 다시 구매하고자 했으나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쓴 것을 읽었다. 피카소도, 헤밍웨이도 채트윈이 설명한 카르네  몰스킨과 같은 노트를 쓰고 있었다. 세브레곤디는 위대한 몽상가들이 즐겨 쓴 노트를 부활시키기로 마음먹었고, 그것이 오늘날의  몰스킨이 되었다.

헤밍웨이.

브루스 채트윈은 <송라인>에서 이렇게 쓴다.

“한곳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엄습하기 전에 이 노트를 다시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흥미롭거나 나를 사로잡는 아이디어나 인용구,  우연한 만남들을 종이에 간략하게 적어두어야 한다. 그렇게 적은 메모들은 나를 떠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설명해줄 것이다.  바로 ‘인간은 왜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몰스킨은 광고가 필요 없었던 브랜드다. 많은 사람이 커피숍에서 책을 읽으며 맘에 드는 글을 옮겨 적으려 테이블 위에  올려둔 노트 자체가 광고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Landor의 밀라노 오피스 헤드 안토니오  마라차는 카테고리 메이커에서 카테고리 아이콘으로 바뀐 회사다”라고 평가했다. “몰스킨이 전달하는 감성적 열망이라는 자산은 문구 그  이상이다”.


참고 및 인용

데이비드 색스. 박상현 번역. “아날로그의 반격.” Across Publishing Co. 2017. P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