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스타트업이 이기는 이유 (OS를 만들어라)

혁신적이고 섹시한 프로덕트가 아니라, 지루하고 뻔한 프로덕트여야 살아남는다.

지루한 스타트업이 이기는 이유 (OS를 만들어라)
Photo by Claudio Schwarz / Unsplash
"스타트업은 지루해야 살아남는다."

스타트업은 지루해야 살아남는다. 화려하고, 혁신적이고, 섹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지루할 때 생존율이 가장 높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지루한 것은 화려하지 않고 겉으로 잘 드러나지도 않지만, 고객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존재이다. 스퀘어(Square)는 식당의 결제를 담당하고, 스트라이프(Stripe)는 온라인 상점과 SaaS의 결제를 담당한다. 뱅크샐러드와 토스는 사용자의 금융과 소비라이프를 담당한다.

B2C든 B2B든 고객의 "오퍼레이션"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그 축을 기반으로 확장할 기회를 잡는다는 것이다. 오퍼레이션의 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 Distribution (유통), 즉, 특정 시장에서 제품(가치)을 수요자에 공급하는 과정을 지배할 수 있다.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치명적인 이유 중 하나는 대기업과의 경쟁이다.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대기업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데,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이 싸움에서 밀려 폐업에 이른다. 스타트업이 새롭고 신박한 것을 출시하더라도 대기업은 금방 따라 할 수 있고 심지어는 더 좋은 기능을 더 싼값에 제공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트업이 성공적으로 궤도에 안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특정 시장에서 "운영 체제"(Operating Systems)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운영 체제라 함은 Windows 나 Mac이 아니라, 말 그대로 운영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갖춰져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다.

안드리센호로위츠의 파트너이자 BNPL 선두주자 Affirm의 공동창업자 Alex Rampell 은 스타트업은 (지루한 사업이지만) OS가 되어야 이길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한다. 그가 왜 "OS"가 되고자 하는 스타트업에만 투자하는지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여기서부터는 프리미엄 구독자 분들께만 보입니다.

"TiVo 딜레마"

Alex Rampell이 제시한 "TiVo 딜레마"는 스타트업이 시장에 아무리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아도 금방 대기업들이 arbitrage할 수 있어 결국 시장 구조는 원점으로 복귀하게 된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TiVo는 1999년에 출시한 TV 라이브 콘텐츠 녹화 장비였다. 방송을 실시간으로 녹화해서 나중에 볼 수 있도록 하는 전자제품으로, 당시에는 재방송 아니면 다시는 프로그램을 볼 수 없었기에 굉장히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TV 프로그램이 없으면 녹화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TV 프로그램을(채널) 유통하던 Comcast, Cox 등의 방송통신사 없이는 TiVo는 아무 쓸모 없는 제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TiVo는 시장의 구조상 어쩔 수 없이 Comcast나 Cox 등의 방송통신사와 채널 파트너쉽을 맺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TiVo 와 같은 포지션에 있는 스타트업이 있다고 가정할 때 Comcast 나 Cox 등의 방송통신사, 즉, 시장 구조와 유통 및 배급을 지배하고 있는 "대기업" (incumbent)이 어떤 대응을 할지 알아볼 수 있다. 주로 아래 3가지 중에 하나다.

1. 방송통신사와 채널 파트너쉽을 맺는다. 하지만 Comcast와 같은 대형 방송통신사는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파트너쉽을 훨씬 유리하게 체결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단독 계약을 강요함으로 다른 경쟁 유통사와의 파트너쉽을 맺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2. 유통 및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한다. 하지만 이 경우 유통사는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프로덕트를 인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회사를 싸게 팔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시장에서 언제든 "더 좋은" 프로덕트가 나올 때면 (혹은 유통사가 "우리가 직접 만들지 뭐" 할 때면), 스타트업의 인수 가치는 팍팍 떨어진다.

3. 유통사가 무시하고 똑같은 프로덕트를 Accenture 같은 컨설팅회사에 맡겨서 뚝딱 만든다. 당연히 프로덕트 하나에만 온전히 집중한 스타트업의 것보다 떨어지겠지만, 유통사는 유통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시장에서 스타트업을 몰아낼 수 있다.

결국 치열한 경쟁 끝에 승리하는 쪽은 유통을 지배하는 쪽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역시 어떻게 해서든 유통을 먼저 차지하는 쪽으로 사업을 키워나가야 한다.

모든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경쟁은 결국 스타트업이 대기업보다 먼저 distribution을 차지할 수 있는 가에 달려 있다. — Alex Rampell

The battle between every startup and incumbent comes down to whether the startup gets distribution before the incumbent gets innovation.

운영 체제가 되어야 하는 이유

유통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시장(vertical) 내에서 운영 체제(Operating Systems)가 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OS가 되는 길은 먼 길이고, 어려운 길이지만, 한번 OS가 되고 나서부터는 시장 구조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디자인할 수 있게 된다.

운영 체제는 곧 고객의 System of Truth이다.

치과 병원에서는 Dental Practice Management - 줄여서 DPM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치과의사를 포함해 간호사, 어시스턴트 등 치과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은 모두 매일 같이 DPM에 로그인해서 환자의 기록을 보고, 기록한다. 환자가 내야 할 금액도 DPM을 통해서 청구하고 결제와 영수증 처리, 그리고 보험사에 청구하는 것까지 모두 DPM을 통해서 관리한다. 즉, 치과 운영의 운영체제는 DPM 소프트웨어인 것이다.

DPM 시장에는 Henry Schein이라는 회사가 있다.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치과는 Henry Schein의 프로덕트를 사용한다. Henry Schein 을 통해서 치과의 모든 운영을 관리하고 심지어 환자 치료 기록과 상담 기록도 관리한다. 그래서 Henry Schein을 이용하는 고객(치과)들의 리텐션은 100%에 달한다. Henry Schein의 OS를 기반으로 치과를 운영하니까.

운영 체제 프로덕트는 Henry Schein 처럼 특정 버티컬의 엔진으로서 100%에 가까운 리텐션을 보인다 (높은 DAU & WAU).

DPM 시장뿐만 아니라 System of Truth로써 운영 체제는 강력한 리텐션과 use case 및 usage를 만든다. 미국에서 음식점 및 상점들에 POS를 공급하는 Toast는 POS를 포함해 자영업자들의 전반적인 운영을 관리할 수 있는 OS의 역할을 한다. Toast에 로그인하면 레스토랑 주인은 직원들의 Payroll, 식자재 재고, 세금, 테이블 주문, 결제/POS, 리워드(쿠폰 등) 등 레스토랑 운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Toast는 레스토랑 주인들에게 System of Truth 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프로덕트가 System of Truth(SoT)가 되면 사용자들은 프로덕트에 올리는 기록, 운영 사항 등을 언제나 최신 상태로 유지하며 활용한다. 이 말은, 자리 잡은 SoT 를 기반으로 다른 가치 제안 (value propositions)들을 붙여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스타트업이 (지루하지만) 운영 체제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공짜 Distribution

SOT 프로덕트와 SOT 포지션이 없는 프로덕트들과 비교해보자. 자영업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출회사는 대출을 우리 회사로부터 받기를 원하는 자영업자들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사업을 해야 하는 대출회사는 많다.

만약 Toast 나 Stripe같이 "이미" 자영업자들이 SOT으로써 자리를 잡았다면, 대출사업으로 바로 확장할 수 있고, Toast/Stripe 사용자들에게 바로 영업할 수 있다. 즉, 공짜로 Distribution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OS (SoT) 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확장성에 있다. 개발자들에게 SMS API를 제공하는 트윌리오(Twilio)는 SMS 를 넘어 무한한 확장성을 갖고 있다. 기업들에 클라우드 서버를 제공하는 AWS도 클라우드를 넘어 무한한 확장성을 갖고 있다. 대기업 세일즈팀이 사용하는 CRM을 만드는 Salesforce는 세일즈 OS로서 무한한 확장성을 갖고 있다.

TiVo를 만들지 말고, Comcast를 만들어라.

앞서 설명한 TiVo 딜레마를 보면, 왜 스타트업이 TiVo 보다 Comcast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 보면 이 조언은 '미친 조언'이다. 하지만, 관점을 다르게 가져가 보면 말이 된다.

TiVo는 Comcast를 만들 수 없지만 (Comcast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사업 전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Comcast는 자신만의 TiVo를 만들 수 있다.

대기업을 상대로, 돈과 시간이 무수하게 많이 들어가는 Comcast의 포지션 (OS)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운영 체제를 만들 수 있을까?

OS의 종류

  • 특정 버티컬(vertical) 영역의 백엔드를 점하는 OS (예: Toast, Shopify, Uber, Salesforce, Toss)
  • 여러 버티컬을 수용할 수 있는 horizontal OS (예: Square, QuickBooks, Stripe, 카카오)

스타트업은 부족한 자원으로 대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처음부터 대기업의 프로덕트만큼의 퀄리티를 낼 수도 없고, 기능 면에서도 한참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OS를 만들 수 없다. OS를 만들려면 무수히 많은 돈과 시간이 드니까. 게다가 열심히 만들어 시장에 나오면, 이미 시장의 구조는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의 Go-to-Market 전략은 "쐐기" (wedge)처럼 날카롭게 시장의 틈을 파고들어야 한다.

쐐기와 같은 기능은 고객이 일단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오게 하는 '미끼'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와 같은 역할을 한다.

쐐기 기능은 고객이 (1) 매력적이라고 느낄 만한 가치 제안이어야 하고, (2) 고객이 스타트업의 프로덕트를 사용하면서 관성(inertia)이 생길 만큼 충분한 시간동안 고객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그래야 스타트업은 유지되는 고객을 기반으로 OS로서 점차 프로덕트의 포지션을 만들 수 있다.

쐐기 같은 기능으로 남으면 안 되나?

Dropbox는 "USB 없이 파일 연동"이라는 쐐기 같은 기능을 갖고 시장에 진입했다. 오늘까지도 Dropbox의 핵심 가치 제안은 파일 연동에 있지만, 그 기능을 중심으로 다양한 OS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Dropbox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파일 연동" 기능 자체는 이미 수익구조 밑바닥까지 경쟁해야 하는 Commodity 비즈니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의 성공 조건

스타트업의 성공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변수가 있지만, Go-to-market의 관점에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진입하려는 시장에 '지각변동'이라고 부를 만한 변화가 있고, 그 변화는 스타트업이 OS로서 자리 잡을 동안 충분한 순풍(tailwind)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클라우드로의 전환이다. Salesforce 는 Oracle, SAP 등이 On Premise 로 제공하던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를 SaaS의 형태로 제공한 첫 플레이어다. 클라우드 전환 이외에도 블락체인, 메타버스, Marketing Automation 등 산업의 tailwind는 다양한 형태로 분다.

2. 5개 고객사를 만드는 데 불공평한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5개는 대략적인 숫자이고, 시장마다 숫자는 비례하게 달라질 수 있다. 1개 고객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5개는 아무나 만들지 못한다. 쐐기 만으로 시장에 진입하려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방법만 가지고는 안 된다. 예시로:

  • 해당 시장을 누구보다도 더 자세하게 이해하고 있거나,
  • 친한 지인이 전부 타겟 잠재고객이거나,
  • 창업자가 수 만 명의 팔로워와 팬을 가진 인플루엔서이거나,
  • 아직 arbitrage 되지 않은 GTM 채널을 독점하고 있거나 등이 있다.

고객은 TiVo를 분명 원하지만, "필요한" 것은 Comcast와 같은 OS이다. 그렇기에 쐐기 같은 GTM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제공해주면서 고객을 유입시키고, 시장에 지각변동과 같은 본질적인 변화를 만나 OS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다.

OS 사례

앞서서 말한 Salesforce, AWS, Twilio, Toast, Square, Stripe, Shopify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운영 체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외에도:

Brex

미국의 핀테크 회사 Brex 는 '스타트업이 쓸 수 있는 법인카드'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오늘 Brex 엔 법인카드 서비스뿐만 아니라 체크 은행, 지출 관리, 회계 장부 관리 등의 wedge 기능을 붙여가며 스타트업 재무팀OS가 되어가고 있다.

Uber

우버를 한번 설치하고 결제수단을 등록한 다음부터는 '지워지지 않는 앱'이 된다. 사용자 습관에 관성(inertia)가 생기기 때문이다. 온디맨드 택시 서비스부터 사용하겠지만, 그다음에 음식을 배달하고 생필품을 주문하는 습관이 형성된다. 배송/운송/이동의 OS가 되어가고 있다.

출처 및 참고자료:
Distribution vs. Innovation
Invest in Operating Syste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