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이 좋아서 쓰는 경우

유틸리티보다 인식 / Status Quo에 만족하지 않는 것 / B2B 소프트웨어는 기회

제품이 좋아서 쓰는 경우

같은 기능을 하고 같은 가치를 제공하는 제품이라면, 기왕이면 더 좋은 UX와 UI를 가진 제품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혹시 제품의 본질적 요소들보다 형태가 더 좋아서 쓸 경우가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더 잦을 것 같다. 뛰어난 UX와 매끄럽고 예쁜 UI를 가진 제품에 매료되어 기능이 좀 덜하더라도 쓰게 되는 경우. 유틸리티 기능과 더불어 디자인과 브랜드는 소프트웨어에서 말하는 프로덕트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경쟁이 다분하고 비슷하거나 아예 똑같은 비즈니스를 하는 업계에서는 UX, UI의 형태와 브랜드가 아주 큰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기능이 형태를 만든다” (form follows function)라는 철학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가 제품을 만들 때도 당연히 이 foundation을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이 철학도 다른 말로 말하면 “잘 만든 형태”, 즉 ‘제품이 좋아서 쓰게 되는’ 수준의 형태는 곧 본질적 기능에 매우 충실한 형태라는 얘기다.

우리 회사의 멘토인 Jaap 은 리프트를 사용하지 않고 우버를 사용한다고 한다. Jaap 이 우버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우버가 그에게는 순전히 더 좋은 제품이기 때문인데, 미묘한 차이지만 우버가 주는 형태가 훨씬 더 편하고 사용감이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개인차가 분명 있겠지만, 나 역시 리프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우버만을 사용하는데, 여기에는 분명히 우버의 브랜드(지적이고, 완벽하고, 정확한)와 제공하는 UX/UI가 리프트보다 훨씬 더 내게 잘 맞는 이유가 크다.

슈퍼휴먼은 another 이메일 클라이언트 앱이다. 지난 몇년 간 이메일 클라이언트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 많은 이메일 클라이언트들은 여전히 유저들의 니즈를 충분히 충족해주지 못하고 있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월 35 달러를 요구하는 상당히 비싼 제품이다. 그래도 잘 먹힌다. 왜냐하면 제품이 기존 이메일 사용경험보다 10배는 더 좋기 때문이다.

인식이 유틸리티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 소비재 (consumerial goods) 섹터에서만큼은 이제 필요해서 사는 상품은 없다. 이미 제품 본연의 기능으로 차별화하기에는 한계점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소비재 업계에서의 이러한 변화 및 특징이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B2B) 업계에서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스타트업에는 큰 기회라고 볼 수 있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쓰레기 같은 UX와 UI를 견디면서 업무를 해왔다. SAP와 오라클 등의 ERP 모듈을 사용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효율성의 이름 아래 형태나 사용자 편의, 브랜드, 그리고 미적인 부분은 B2B 소프트웨어에서 줄곧 등한시되어 왔다.

사실 이미 어느 정도는 슬랙, Asana, HubSpot, Notion 등이 이러한 수요를 맞춰 주기 시작하면서 B2B에서도 “제품이 좋아서 쓰는” 사례가 생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B2B 스타트업들에 기회는 많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슬랙과 아사나(Asana) 등이 이메일을 대체하겠다 선포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협업은 전화와 이메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슬랙과 아사나는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한 뒤를 차지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한 슬랙/아사나와 같은 새로운 B2B 제품들이 처음의 고객들의 니즈는 100% 채워주었을 지는 몰라도 필연적으로 스케일하면서 포기해야 할 수 밖에 없었던 니즈들은 여전히 많다.

게다가 시장에 다양한 도구가 한꺼번에 등장하게 되면서 우리는 use case마다 맞는 도구를 쓰기 시작했는데, 어쩌면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우리는 이메일+전화만으로 업무를 수행할 때보다도 더 불편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기형적인 업무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잘 만든 SAP”, “잘 만든 Oracle”이 나올 때가 되었다. 대기업을 위한 ERP 시장뿐만이 아니다. SMB와 스타트업을 위한 툴들도 마찬가지다. SAP와 오라클 들은 더 잘 만들 필요가 없다. 시장은 지금의 형태로도 (*불편하지만)*충분히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수요가 계속 있는데 굳이 크게 노력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지금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툴은 매우, 매우, 매우!!! 불편하고 쓰레기 같다는 것을.

이건 분명 스타트업들에 기회다. 가진 건 속도뿐인 팀에게 새로운 제품을 내놓았을 때 반응할 시장이 있다는 것은 분명 엄청난 기회다. 이젠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뿌듯할 정도로의 제품이 나와주어야 한다. 뿌듯함을 안기는 비즈니스 도구를 만드는 팀이 다음 SAP, Oracle이 될 것이다.

우리 팀도 이런 것을 목표로 삼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 원격 근무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고 있다. “Status Quo가 충분히 좋다”라는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지금 시장은 분명 원격 근무를 하면서 불편한 점들을 감수해가며 (making trade-offs) 일하고 있다. 잘 만든 도구에 대한 수요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Question is, are you going to be in front of t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