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SaaS 경쟁 시대에 차별화하기
거의 웬만한 분야에는 이제 SaaS를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거의 모든 분야에 SaaS 애플리케이션들이 진출해 있는 지금, 새롭게 출발하는 SaaS 들은 어떤 방식으로 차별점을 가져갈 수 있을까?
“There’s a SaaS for that.”
거의 웬만한 분야에는 이제 SaaS를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거의 모든 분야에 SaaS 애플리케이션들이 진출해 있는 지금, 새롭게 출발하는 SaaS 들은 어떤 방식으로 차별점을 가져갈 수 있을까?
일하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고 그 방식에 맞는 제품을 만든다.
이 부분에서는 아마도 슬랙이 가장 유명한 케이스이지 않을까 싶다. 슬랙 이전에는 open group 채팅 기반 업무 형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업무를 위해 채팅을 하는 것 자체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1:1 DM 위주였다. 슬랙은 1:1 DM이 아닌 한 가지 주제를 담은 채널을 (#product, #marketing 등) 정해놓고 거기서 모든 구성원이 대화하게 했다는 점에서 여태 반복해온 업무 패턴의 명백한 단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만든다면, 슬랙처럼 일하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의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 굳이 협업 분야가 아니더라도, 이를테면 디자인 업무를 채용 및 프리랜서를 고용하는 방법 대신 매월 구독료를 지불하면 무제한으로 디자인을 해주는 스타트업인 Manypixels도 마찬가지로 일하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한 케이스다.
물론 채팅이든, 디자인 외주든 간에 기술이나 유틸리티 자체의 새로움은 없다. 채팅은 90년대부터 있었던 기술이고, 디자인을 외주하는 것이 새로운 생각은 당연히 아니다. 슬랙과 매니픽셀스는 새로운 기술이나 생각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에 집중했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은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낼 여지가 크다.
새롭게 카테고리를 만든다는 것은 카테고리내 경쟁자가 적거나, 아예 없다는 뜻이다. 슬랙이 처음에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초기에 경쟁자가 없었다는 점도 큰 몫을 했다.
디자인 영역에서도 피그마 (Figma)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Cross-functional 협업이 결여되어 있던 기존의 디자인 업무에 실시간 멀티플레이어 협업을 추가하게 했기 때문이다. 피그마가 하고자 하는 것에 새로운 기술이 추가되지는 않았다. 다만 디자인 업무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고, 그 방식을 제품에 녹여낼 수 있었기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프로슈머”를 타겟한다.
2019년 여름에 Andreesseen Horowitz는 이메일 클라이언트 스타트업 Superhuman에 $33M 규모의 Series B 투자를 하면서 “prosumerization of the enterprise space”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굳이 팀 전체가 사용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 (individual)의 생산성을 향상 시켜줄 도구들을 많이 찾아다니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변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바로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프로슈머라이제이션’입니다. 내가 CEO든, 경영진이든, 파트너든 간에 ‘프로슈머’로서의 나의 필요는 줄곧 무시당해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백, 수천만 명의 프로슈머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카테고리인 프로슈머 툴들이 우리에게 슈퍼파워를 줄 것입니다.”
"We are now at the start of a new wave: the prosumerization of the enterprise. It does not matter whether I was CEO, corporate executive, or general partner - my needs as a prosumer have been ignored for years. And yet there are tens of millions of power users just like me. Now, a new category of prosumer tools can give these users superpowers.”
-David Ulevitch, 안드리센 호로위츠 파트너
프로슈머란 돈을 주고서라도 자신의 생산성, 삶의 질 등을 향상(elevate)할 방법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것이 To-Do 리스트이던, 일정 관리이던 간에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물론 기본 도구들로도 충분하다 (애플이 제공하는 이메일, 캘린더, 혹은 구글이 제공하는 지메일,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하는 엑셀 등). 그러나 더 나은 것들을 원하는 사람들은 간절하다. 한 달에 $30씩 낼 만큼.
이러한 프로슈머를 타겟해서 제품을 만드는 것은 SaaS 무한 경쟁 시대에서 차별화를 강하게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다. 이미 Obsolete한 제품들 (예: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구글 지메일/캘린더 등)은 프로슈머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YCombinator의 투자를 받은 Sunsama도 프로슈머를 타겟하는 것으로 기존 생산성 앱과 차별화하고 있다. Sunsama는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투자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툴들 (구글 캘린더, 아사나, 슬랙, 트렐로, 깃헙 등)을 모두 통합해 한 곳에서 보고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SaaS다. 모두를 위한 생산성이 아니라 ‘창업자’와 ‘VC’와 같은 프로슈머들에게 전부를 거는 것으로 차별화하는 것이다.
제품의 수준도 확실히 높아졌다. Minimum Viable Product (MVP)는 B2C에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SaaS, 특히 프로슈머를 타겟하는 SaaS는 (굳이 jargon을 붙히자면 “B2C2B” 정도가 되겠다) 기준이 더 높다. EchoSign을 창업한 Jason Lemkin은 SaaS는 “MVP가 아니라 MSP - Minimum Sellable Product를 만들어야 한다”며 제품의 수준을 여느 B2C 제품들보다 훨씬 더 끌어올릴 필요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업 조직이 아닌 프로슈머 개인이 주 사용자가 되면서 제품 수준에 대한 기대도 훨씬 더 높아지게 되었다. 조직을 위한 소프트웨어는 보통 구매자 != 실사용자지만, 프로슈머 (prosumer)들은 직접 본인이 구매하기 때문에, 평소에 사용하는 B2C 제품들 (예: 인스타그램)과 비슷한 수준의 제품을 원하는 것이다.
이들은 일을 잘하는 것을 넘어 ‘일을 멋지게’ 하고자 하는 감정적인 욕구 역시 갖고 있다. 요새 사람들은 일이 재미 없으면 안 한다. 일은 밥벌이 수단을 넘어선 지 오래다. 무슨 일을 하느냐가 자신을 정의하고, 또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자신을 만든다. 프로슈머들은 그렇기에 선택하는 도구도 까다로운 것이다.
Obsolete한 제품을 가져다가 새롭게 디자인한다.
프로슈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더 예쁜 인터페이스가 아니다. 제품을 사용하는 방식, 즉 UX도 ‘새로운 디자인’의 중요한 부분이다.
앞서 말한 Superhuman도 이메일이라는 구닥다리 기술을 가져다가 게이미피케이션과 누구든 쉽게 배울 수 있는 단축키를 통합하여 새롭게 디자인한 경우고, 최근 세쿼이아 캐피탈에 투자를 받은 Linear역시 애자일 개발 환경에서 필요한 보드와 이슈트랙킹을 누구든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새롭게 디자인한 경우다.
이처럼 Obsolete 한 제품들을 가져다가 새롭게 디자인 하는 것이 똑똑한 차별방식인 이유는, 우선 제품의 유틸리티는 이미 기존 사업자들이 다 검증해주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 효용성 자체를 의심할 사람은 없다. 아무도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나 엑셀의 효용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특히 MS Office 같은 제품인 경우에, ‘배우지’ 않고는 제대로 쓸 수 없다. 엑셀은 물론이고, 파워포인트나 워드도 정말 잘 쓸려면 수년간의 학습과 연습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들을 자신들의 차별점으로 정의하고, 누구든지 쉽고, 빠르고, 멋지게 일을 수행할 수 있게끔 디자인에 집중하는 것이다.
디자인을 핵심 차별전략으로 가져가는 것은 지금 실리콘 밸리에서 새롭게 뜨는 스타트업 트렌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구든 손쉽게 아름다운 슬라이드를 만들게 해주는 Pitch와 Beautiful.ai 와 같은 스타트업도 생겨나고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스프레드시트를 대체하고자 하는 Airtable도 계속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좀 더 자세하게 썼다.
언번들링 된 앱들을 다시 번들링한다.
사실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번들링과 언번들링은 시장 사이클처럼 끊임없이 반복한다. 지난 1-20년 간 SAP, Oracle 제품을 하나씩 떼어서 사업화하는 언번들링이 큰 트렌드였다면, 요새는 다시 리번들링이 또 하나의 트렌드인 것처럼 보인다.
에버노트를 이기고자 노트, Knowledge mgmt 앱으로 출발했던 노션(Notion)은 연이어 Project management의 영역인 To-Do, Board, Calendar 등을 하나씩 통합했고, 이제는 에버노트 뿐만 아니라 구글 독스, 아사나(Asana) 등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리번들링에 성공했다.
리번들링을 차별화의 핵심으로 가져갈 때 판단해야 할 기준은 바로 리번들링을 시도하려는 축 (axis)들이 서로 얼마나 촘촘한 관계를 띄고 있는지다. 당연한 얘기지만, A 제품과 B 제품이 합쳐져야 할 이유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