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차이
파는 사람은 사는 사람의 입장이나 관점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
오늘 카페에 들렸다가 꽤 재밌는 경험을 했다. 내가 방문한 카페는 브런치 음식도 같이 파는 가게였는데, 프랑스계 이민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나는 잠깐 이메일을 확인하고 자잘한 업무를 처리할 겸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았는데, 토요일 오후 12시 쯤이었으니 대부분의 테이블은 이미 다 찬 상태였고, 두 개 정도 남아 있어 그중 작은 테이블을 골라 앉았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노트북을 꺼내 들었는데, 그때 주인이 노려보며 “laptops, go here”라며 크지만 여러 명이 앉게 되어 있는 긴 벤치 테이블에 옮기라는 몸짓을 보였다. 내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움직이지 않자, 아주 조그맣게 벤치 위에 써놓은 “communal table, for laptop users”라는 안내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didn’t you see this?” 조용하게 내가 다가와 말을 걸어 자리를 옮기게 한 것도 아니고 주위 여러 테이블이 놀라서 쳐다볼 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는 것은 내게 망신을 주려는 의도가 분명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순순히 주인의 명령에 따르며 알았다고 하고, 자리를 옮기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물론 랩탑을 가져온 고객은 입장을 못 하게 하거나, 다른 테이블에 앉히는 것 그 자체로는 문제가 전혀 아니다. 그래서 주인과 논쟁을 벌일 필요도, 내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쓸 필요도 없다. 남의 사업장에 왔으니 사실 자리를 옮겨달라는 요청 자체로는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맞다. 다만, 이 경험을 통해서든 재밌는 생각이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1. 파는 사람은 사는 사람의 입장이나 관점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
누구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모두가 슈퍼리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주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안내문은 입구에 쓰여 있지도 않고, 그저 벤치 테이블 위에 조그맣게 쓰여있을 뿐이다 (아래 사진). 주인은 “Can’t you see this?”라며 자리를 옮기게 했다.
이걸 보지 않고 다른 테이블에 앉았다는 이유로 망신을 준 것은 사는 사람, 그러니까 고객의 입장에서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부당하다고 판단되어진다.
이 경우,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었다면, 입구에서부터 안내를 하거나 커피를 구매할 때 POS에 안내문을 놓거나, 혹은 아래 Scenario 3에서 얘기할, “조용히 다가와서 친절하게 랩탑 고객용 테이블로 안내”해야 했다.
2. 주말 점심시간 브런치카페에 혼자 커피 마시러 오는 손님이 못마땅할 수 있다. 아마 당장 공석 테이블이 하나 사라지니 눈앞에 보이는 기대 매출이 더 커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보면 나를 내버려 두거나, 아니면 조용히 다가와 친절하게 부탁했어야 했다.
평균을 낼 만한 데이터가 없지만, 혼자 랩탑을 들고 커피 마시러 오는 손님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을 시간은 길어야 한 두시간 남짓이다 (한국에서는 얘기가 조금 다른 거로 알고 있기는 하다. 심지어 죽치고 앉아 있으며 점심도 먹고 온다고…). 나의 경우에는 충전기를 일부러 갖고 다니지 않고, 이번에도 30분 정도 앉아 있을 생각이었다.
최대 3명이 겨우 앉을 작은 테이블에서 주인이 최대 두시간 동안 올릴 수 있는 매출은 아무리 커봐야 $5-60달러일 것이다.
주인이 나라는 고객을 포기하고 테이블을 비운 선택에 대한 경제적 손실을 구상해보자 (아주 간단하게).
이 게임에 대한 간단한 가정을 해본다면:
- 테이블 최대 기대 매출: 시간당 $30
- 테이블이 돈을 벌 수 있는 최대 시간: 120분
이렇게 놓고 보면 주인이 당연히 선택했어야 할 행동은 Scenario 3, 혹은 Scenario 2 였을 것이다. 주인은 겨우 $15의 “기대”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연간 총 기대 매출 $465를 포기했다. (위 참조; $530-$65) 또한 자기 가게에 대한 나쁜 입소문이 퍼질 수 있는 리스크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누군가 내게 이 가게에 대해 묻는다면, 좋은 소리를 할 리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장기적인 사고보다는 단기적인 사고에 익숙하고 당장의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하는 오류를 잘 범하는 편이다 (주식시장만 관찰해도 이점은 누구나 알 수 있다).
3.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자기 핵심 고객층 밖의 사람들을 배척할 필요는 없다.
당연히 주인 입장에서는 음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이 커피만 마시러 오는 손님보다 더 우등한 존재다. 그리고 사업적으로 음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하고 테이블 역시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커피만 마시러 오는 손님을 배척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위에서 볼 수 있듯, 이것은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영세 가게들이 (이 가게를 포함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찾아주는 고객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장사의 원칙이 아닐까. 미국에서는 간혹 가게들이 “COVID-tax”를 매긴다. 이건 정부에서 명령한 것이 아닌,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우리 장사가 코로나19로 인해 힘들어 졌으니, 세금을 걷겠다”라는 것이다. 가게들에게 돈을 써주는 주체인 고객의 존재 없이는 사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을질”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쓰며 보낸 90분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내가 처음 앉았던 테이블은 여전히 90분째 공석으로 고객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