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 기억 만들기

깊은 관계를 통해 얻는 지식 체계

분산 기억 만들기

끊임없이 혁신하는 기업에서는 당연히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만들어진다. 혁신하는 기업에서는 구성원들이 능동적으로 서로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구성원들끼리 많은 대화와 협업을 하는 조직에서만 쌓이는 비정형 자산을 분산 기억(transactive memory)1이라 한다. 분산 기억은 한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지식/기억의 총합을 말한다.

심리학자 다니엘 베그너(Daniel Wegner)는 커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2 3에서 서로를 깊게 아는 관계를 맺은 조직 내에서는 지식의 총합이 많이 늘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혼자 있을 때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을 때 내가 아는 것이 더 많아지고 기억하는 지식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전화번호를 스마트폰에 저장해두고 머릿속에는 더는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정보를 우리 주위에 깊은 유대감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저장해두고 있다. 이것이 분산 기억이다.

베그너가 밝혀냈듯 효율적인 분산 기억의 조건은 바로 '서로를 깊게 아는 관계'인데, 커플들이나 가족이야 그렇다고 치고, 기업에서는 얼마나 서로를 잘 알아야 분산 기억 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

우선 구성원의 수가 많지 않아야 한다.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Tipping Point에서 한 조직 내에서 서로서로 모두 잘 알고, 서로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 사람의 수는 150명이라고 말한다. 150명이 넘으면 이름만 알거나 이름조차 기억 못 하는 관계가 형성되기 쉽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는 깊게 아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으니 150명 이상이 만드는 분산 기억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노스페이스 등 등산복에 들어가는 Gore-Tex로 유명한 원단기술 기업 Gore Associates가 분산 기억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Gore Associates는 각 부서, 그리고 각 공장에 150명을 넘지 않도록 하는데 만일 생산 규모가 증가해 인원을 늘려야 하면 차라리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고 한다. Gore Associates 창업주 Bill Gore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공장 인원이 150명 남짓이 되면 실수가 잦아진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경쟁 회사들은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 한 공장에 수백 명을 고용하고 중간관리자들을 뽑는다.

그러나 매년 수조 원의 매출을 내는 Gore에서는 중간관리자도 없다. 모두가 "Associates"라고 할 뿐, 아무도 "보스"를 갖고 있지 않다. 대신 멘토와 멘티가 있으며 멘토들은 멘티의 성장을 도울 뿐 전통적인 "상사"개념이 아니라고 한다.

Gore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분산 기억에 있다.

소규모 집단을 구성해 서로 깊은 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깊은 "인간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중간관리자가 필요 없을 만큼 유기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별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기대는 저버리더라도 괜찮을 거라 짐작하지만, 친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대에는 꼭 부응하려 노력한다. "상사"의 기대보다 "동료"의 기대가 더 중요한 이유다.

분산 기억은 베그너의 커플 실험에서 볼 수 있듯, "깊은 관계"가 기본적인 조건이다. 서로 단지 아는 것을 넘어서 알아야 한다. 서로의 관심사, 말투, 행동, 지식, 성격, 관계 등을 깊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서로를 잘 아는 관계에서는 분산 기억이 효과적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가족과 커플에서 보이는 수준의 신뢰와 깊은 정서적 공감, 그리고 유대감을 Gore는 기업에 적용했다.

흔히 기업에서는 세일즈&마케팅팀과 프로덕트/연구·개발 팀은 서로 잘 모른다. 업무도 다르고, 구성원의 커리어 백그라운드와 분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Gore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업부마다 150명이 넘지 않으니 영업 사원들은 제조설비 직원들도 잘 안다. 제조팀 직원도 영업사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다.

서로 잘 알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직접 가서 물어볼 수도 있고, 대화할 수 있다. 잘 아는 사람들끼리는 자연스럽고 딱딱하지 않은 논의를 할 수 있게 된다. 바로 그런 논의에서 혁신을 선도할 만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조직 내에 빠르게 퍼질 수 있다.

글래드웰의 Tipping Point는 1998년에 출판된 책이라 2021년의 Gore Associates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적어도 여전히 수조 원의 매출을 내고 있고 1984년부터 2017년까지 Forbes의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들 정도로 최근까지도 같은 수준의 문화와 방식을 고수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글래드웰은 Gore Associates처럼 서로 깊게 아는 소규모의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혁신을 크게 확장하고 빠르게 퍼뜨린다고 설명한다.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끈끈한 관계를 기반으로 말이다. 효율적인 분산 기억은 소규모의 사람들이 서로 깊은 관계를 맺게 되면 생긴다.


Footnotes.


1. 본문은 말콤 글래드웰의 Tipping Point에서 나오는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2. Daniel Wegner, "Transactive Memory in Close Relationships," *Journal of Pe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991), vol. 61, no. 6, pp. 923-929.* Web.

3. Daniel Wegner, "Transactive Memory: A Contemporary Analysis of the Group Mind," in Brian Mullen and George Goethals (eds.), *Theories of Group Behavior* (New York: Springer-Verlag, 1987), pp. 200-201. W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