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이탈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제품을 X나 잘 만들면 된다 / Audible의 전략 / 갈 때는 아름답게

고객이 이탈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객이 잘 쓰던 서비스를 중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이유든 간에 서비스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고객의 이탈을 막아보려 할 수 있다. 좀 구차한 방법을 쓰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 휴대전화 통신사들이나 신문사들이 대표적인 구차함을 보여주는데, 고객이 해지한다고 하면 해줄 것이지 구독해지 옵션을 아예 온라인으로 제공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는 2~30분씩 기다려서 콜센터 직원하고 연결해서만 해지가 가능한 서비스도 많다. 그나마 좀 나은 곳은 온라인으로 두긴 하는데 도대체가 사이트 어디에다 두었는지 알 수가 없고 찾더라도 열댓 번의 클릭과 정보입력을 거쳐 해지하게 한다.

지금 생각해도 웃긴데 구차한 서비스들 중에 “정말로 해지하시겠습니까?”를 묻는 프롬트 (prompt)에 예, 아니요가 뒤바뀌어 있어 ‘아니오’를 유도하는 사이트도 있었다. 싫으면 싫은 거다! “아니요”를 눌렀다고 해서, 제품에 지불하는 금액만큼의 가치를 경험하지 못한 고객을 처음부터 다시 해지 절차를 밟게 한다고 해서 마음이 바뀔 일은 없다.

이런 구차하고 간사한 택틱 (tactic)으로 고객들이 귀찮아서 해지를 안 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해지하기로 마음먹었을 정도면 어차피 고객은 그 서비스에서 그만한 (일정 금액을 지불할만한) 느끼지 못했다는 얘기일 것이고 구독료가 쌓여 나중에 귀찮더라도 해지를 해야 할 때는 이미 그 서비스와는 평생 연을 끊을 각오로 임할 것이다. 이런 구차함은 해지하는 고객들이 다시 서비스로 돌아올 일말의 가능성조차 불살라 버리는 멍청한 짓이다.

일례로 일주일 전에 블룸버그 구독을 해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유는 이미 WSJ와 FT를 구독하고 있었고, 블룸버그를 구독 트라이얼을 한 이유는 금융시장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였는데, 이미 FT 등으로도 충분히 많은 정보를 얻고 있었다. 블룸버그 구독을 해지하기 위해서는 정말 참혹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다음과 같다.

구독관리 창

먼저는 계정 정보 페이지로 들어가 구독 관리 창을 클릭해야 한다. 근데 바로 “취소”나 “해지”와 같은 옵션이 없고, 정말 아무도 안 볼 것 같은 하단에 심지어는 다른 색깔로 Need help with your subscription? View FAQ가 적혀있다. 여기서부터 빡치는데 맘에 들지 않는데 일단 가보도록 하자.

View FAQ

블룸버그에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원래 좀 많은가보다. FAQ가 무슨 거의 기사 수준으로 길다. 단 번에는 도저히 찾지를 못하겠어서 Ctrl+F로 “cancel”을 검색해서 찾았다. 그랬더니 Customer Support에 문의하란다.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링크가 있어서 CS페이지로 가보도록 하자.

Customer Support

…그랬더니 취소하려면 이 정보를 다 입력하란다. 아니 너네가 내 정보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걸 내가 도대체 왜 입력해야 하지 싶지만, 어쨌든 돈 나가는 건 싫으니 입력해본다.

그러다가 Account Number를 입력하는 게 있는데, 신문 구독 계정 번호를 도대체 누가 외우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차오르는 열불을 가라앉히고 다시 계정 정보창으로 돌아가 보는데…

없다…..

그래서 다시 Customer Support 창에 있는 문구를 뒤져보니 이메일로 보내진 확인 이메일 (confirmation)에 있을거야라고 친절하게도 알려준다!

그래서 이메일 받은편지함으로 가서 “bloomberg confirmation” 검색을 했더니…

….언제 또 3달 전 받은 confirmation 이메일을 찾고 앉아있냐…

우여곡절 끝에 confirmation 이메일을 찾아 구독을 취소했다. 이런 블룸버그의 간사하고 구차한 경험은 내가 블룸버그 이용을 다시 고려하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자, 그러면 고객이 서비스를 이탈하려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제품을 졸라 잘 만들면 된다.

갓 넷플릭스의 계정정보 화면이다. 넷플릭스는 쩌는 제품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이탈을 한다해서 다른 회사들처럼 쩔쩔 매거나 치졸하게 굴지 않는다. 아름답게 보내준다. 제품이 개선되어지면 내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품 개선 = 내가 보고 싶은 컨텐츠의 확장). 넷플릭스의 계정정보 화면에 가면 취소 버튼을 곧 바로 확인할 수 잇다. 물론 이메일, 비밀번호 변경만큼 직관적으로 설계되어 있지는 않지만, 취소 버튼을 누르면 바로 취소 확정 전 단계인 “정말로 구독을 해지하시겠습니까”로 간다. 그리고 Yes 하면 바로 취소된다.

나는 2014년부터 넷플릭스를 사용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취소와 재구독을 반복하고 있다. 보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1개월~3개월 정도를 구독하고 다시 해지하고 반복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쿨함덕에 나는 넷플릭스로 돌아간다. 5년간 거의 2년 정도는 구독을 유지했다.

자 현실로 돌아가보자면, 넷플릭스 만큼의 엄청난 제품은 정말 만들기 어렵고 그런 수준의 제품도 시장에 몇개 없다. 넷플릭스처럼 엄청난 제품을 못 만든다면 (혹은 해당 산업이 넷플릭스의 영상 컨텐츠 산업만큼 쿨하지 않다면), 아마존이 운영하는 오디오북 플랫폼 오디블 (Audible)의 다운그레이드 전략 (사실 넷플릭스도 사용하고 있다)을 차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디블은 월 $14.98을 내고 오디오북 1권을 달마다 내려받을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나는 아직 지난달에 받은 책을 다 읽지 (듣지) 않아서 취소하려고 취소 페이지에 들어갔는데 (들어가는 과정도 너무 편했음), 아래처럼 다운그레이드 페이지가 나왔다. 또 멤버십을 “잠시 멈추는” 옵션도 제공했다.

왼쪽 옵션은 월 1권에서 두 달에 1권으로 낮추는 대신 구독료도 2개월에 한 번만 내게 해주고, 오른쪽 옵션은 일시중지할 수 있게 한다. 나의 경우에는 왼쪽 옵션이 더 적합해서 왼쪽 옵션을 선택했더니 1권을 추가로 받을 수 있게 1 크레딧을 지급해주었다 (아래 참조)

그저 다운그레이드뿐만 아니라 지속해서 내가 (고객이) 제품의 아하! 모멘트에 도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셈이다 (1크레딧을 추가 지급함으로써).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객 이탈 대응 전략인가? 블룸버그는 제발 이런 점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의 미션은 고객을 감동(inspire)하게 하고, 실질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다. SaaS와 구독 비즈니스의 사업 특성상 churn은 늘 존재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탈을 방지하고자 구독해지 버튼을 숨기고, 아예 사이트에서 내리는 짓은 정말 미련한 짓이다. 고객이 이탈하려 한다면 최대한의 대응 (위와 같은)을 한 뒤 그래도 가려 한다면 아름답게 보내주자. 추후에 제품이 개선되어지면 돌아와 다시 구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Customer-first, customer-centric 비즈니스를 한다고 모두 외치지만 그 말의 이면에는 설사 고객이 돈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해지하더라도) 돈을 지불하는 고객과 다르지 않게 대해주어야 한다는 점이 있다. 고객 중심 경영을 할 거면, 정말로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주어라. 그게 진짜 고객 중심 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