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 비용(Switching Costs)
최악의 UX로도 세계 1위 B2B 소프트웨어 회사가 될 수 있는 이유
최악의 UX로도 세계 1위 B2B 소프트웨어 회사가 될 수 있는 이유
SAP는 글로벌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돈을 잘 버는 회사 중 하나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비즈니스 시스템을 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라고 하는데, 전 세계의 수많은 기업이 SAP의 핵심 제품군인 ERP를 통해 제조, 물류, 영업, 마케팅, 회계, 전산 등의 핵심 업무를 처리한다.
SAP는 수많은 고객과 유저를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글로벌 소프트웨어 회사지만, 애플이나 구글과는 다르게 유저들이 싫어하는 회사이다. 그 이유는 제품의 사용성에 있는데, SAP의 소프트웨어는 '최악의 UX'로 악명이 높다.
588명의 SAP 고객들을 대상으로 제품의 사용성, 고객 서비스 품질 등을 조사한 적이 있다.1
- 43%는 모든 제품군에서 SAP의 고객 응대 시간이 너무 길다고 응답했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SAP 제품의 데이터 처리 속도가 너무 느려 재무적 리스크가 되는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 50%는 SAP 제품의 처리 속도를 예측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다른 1,000명의 SAP 고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무려 89%의 고객들이 연간 SAP에 지불하는 사용료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불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2
좋은 제품이 좋은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런데도 왜 SAP의 고객들은 최악의 제품, 최악의 UX을 경험하고도 계속해서 SAP를 사용하려고 하는 것일까?
SAP가 최악의 제품으로도 높은 잔존율(retention)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전환 비용"(switching costs)에 있다.
전환 비용은 쉽게 말해 대체재로 전환을 고려할 때 고객이 감지하는 비용을 말한다. 애플 생태계를 벗어나면 더는 쓰지 못하는 iOS 앱들이 좋은 예시다.
복잡한 ERP 시장
ERP 시장은 굉장히 복잡한 구조로 이뤄져 있는 시장이다. CIO/CTO가 사내 ERP를 대체하는 결정을 내리려면 엄청난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한번 전사적으로 디플로이 된 ERP는 쉽게 바뀌지 않고 유지된다.
새로운 ERP로 바꾸려면 시스템을 사용하는 직원들도 다시 교육해야 하고, ERP를 디플로이하는 개발사와 컨설팅사와의 관계도 새로 쌓아야 한다. 또한, 기존 ERP에 들였던 그 외 모든 투자도 모두 매몰 비용으로 인식된다. 여기에는 새롭게 도입할 ERP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현재 사내 업무수행 방식, 시스템 진단도 역시 요구된다. 데이터가 어디에서 발생해 어떤 방식으로, 어느 시스템으로 연결되는지 파악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처럼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도입과정 덕분에 ERP는 고객이 느끼는 전환 비용이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이다.
1억 6,000만 달러짜리 전환 비용
2004년, HP(Hewlett Packard)는 SAP의 ERP를 전사적으로 도입하기로 한다. 전사적 SAP 도입을 다섯 번이나 진행해본 경험이 있는 Christina Hangar(당시 북미 사업부 총괄)는 도입을 위해 약 6주의 시간을 편성하고, 3주 동안은 시스템 전환 작업을 진행하고, 나머지 3주 동안에는 잉여 서버를 제조할 것을 지시했다.
ERP 시스템 도입 실패의 위험성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던 그녀는 혹시 모를 도입 실패를 대비해 서버를 제조하는 공장을 추가로 가동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준비와 차질 없이 전환할 계획을 세우고도 실제 도입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기존 레거시 시스템으로 처리되던 고객사들의 서버 구매 주문이 새로운 SAP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미처리 상태로 시스템 어디엔가 남게 된 것이다. 사태 파악과 복구기간이 길어지자 미처리 주문이 쌓여 전체 주문량의 무려 20% 정도에 이르렀다.
고객사의 입장에서는 HP 말고도 서버를 주문할 회사는 많았다. Dell, IBM 역시 HP와 동일한 수준의 서버를 판매하는 회사였고, HP로부터 서버를 구매할 수 없었던 수많은 회사들은 일제히 Dell과 IBM 등의 경쟁사들에 주문을 넣기 시작했다.
글로 읽기만 해도 아찔한 이 사고를 겪은 HP의 CEO Carly Fiona는 SAP 도입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은 무려 1억 6,000만 달러에 육박한다고 발표했다.
ERP 도입의 전환 비용은 이처럼 크다. ERP 전환으로 인해 발생할 비용 자체도 크지만, 그것보다 전환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risk)이 훨씬 더 큰 비용으로 인식된다.
높은 리텐션과 낮은 만족도의 역설
SAP의 역설적인 높은 잔존율(retention)과 낮은 만족도는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의 경제적 현실을 잘 말해 준다.
한번 SAP를 도입하면, 고객사는 빠져나갈 희망이 거의 없다. SAP는 그렇게 낚아챈 고객에게 십수 년에 걸쳐 신제품 도입, 유지비용, 보수 비용, 업그레이드 비용, 교육 비용, 컨설팅 비용 등을 청구한다.
또한 SAP와 같이 전환 비용을 만드는 회사들은 위와 같은 부수적 서비스 비용을 올려 수익률을 장기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SAP의 주가 이동 그래프다.
전환 비용: 네 번째 파워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이란?
고객이 한 회사로부터 여러 번에 걸쳐 구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호환성(compatibility)도 있다. 전환 비용은 이러한 호환성을 얻을 때 발생한다. 동일한 제품/서비스를 반복해서 구매하는 것도 호환성이고 (예: 새로운 아이폰을 출시 때마다 구매하는 일), 상호 제품/서비스를 구매하는 것도 호환성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을 구매하는 일).
전환 비용(Switching Cost): 고객이 현재 공급원을 다른 공급원으로 대체할 때 감지하는 비용 (잃어버리게 될 가치)
The value loss expected by a customer that would be incurred from switching to an alternate supplier for additional purchases.
전환 비용의 Benefit & Barrier
7 Powers 용어 복습하기 👉 전략의 본질
전환 비용(Power)의 Benefit과 Barrier는 다음과 같다.
- Benefit: 경쟁자보다 더 높은 가격대를 설정할 수 있는 힘
- Barrier: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경쟁자는 고객의 전환 비용을 지불해야 함.
Benefit: 가격 결정권
전환 비용을 만드는 회사는 동일한 수준의 제품/서비스를 팔더라도 전환 비용을 만들지 못하는 회사보다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이러한 Benefit은 (전환 비용의) Power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 계속해서 기존 고객들에게 추가 상품을 판매할 때에만 얻을 수 있다. 잠재 고객에게는 전환 비용이 발생하지 않음으로 Benefit 역시 없다.
또한, Power를 보유한 기업이 기존 고객들에게 판매하더라도 추가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 없으면 Benefit 역시 없다.
Barrier: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전환 비용을 지불해야 함
Power가 없는 기업은 동일 제품/서비스를 판매할 때 고객에게 전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전환 비용을 통해 한 번 고객을 낚아챈 기업은 경쟁기업을 상대로 더 낮은 가격을 책정해 시장에서 퇴출할 수도 있다. 경쟁기업은 이러한 소모적인 비용구조로 인해 시장을 나가게 된다.
따라서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경제와 마찬가지로 전환 비용은 매력적이지 못한 비용구조로부터 Barrier가 세워진다.
전환 비용의 종류
전환 비용은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재무적 전환 비용
쉽게 말해 매몰 비용(Sunk Cost)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대체하려면 새로운 상품을 구매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기존에 갖고 있던 것을 매각/손실 처리하는 비용이다.
ERP의 경우, 신규 시스템 도입과정에 신규 소프트웨어 구매 비용이다.
2. 절차 전환 비용
절차적인 면에서도 전환 비용이 발생한다. 신규 ERP를 도입할 때는 기존 레거시 ERP에 익숙해진 모든 절차와 업무수행 방식을 전환해야 한다. 기존 시스템에 익숙한 직원들도 신규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시 교육해야 하고, 어쩌면 회사의 업무수행 방식 그 자체도 개선하거나 변경해야 할 수도 있다.
또한, 앞서서 본 HP의 도입 실패 사례에서도 그렇듯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실패의 리스크 역시 절차 전환 비용으로 볼 수 있다. 시스템적 오류, 도입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 등 모든 불확실성이 절차 전환 비용이다.
SAP를 기반으로 업무를 처리해 온 모든 직원을 오라클(Oracle)이나 Sage와 같은 다른 경쟁 ERP 시스템으로 새롭게 교육하려면 엄청난 수고와 비용이 들어간다.
또한 전환 비용을 가진 회사는 다양한 영역에서 부수적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해왔기 때문에 단지 1~2개 부서만 새로운 절차와 시스템에 익숙해지면 되는 것이 아니다.
SAP를 도입한 기업은 물류, 회계, 전산, 재무, 제조, 영업 등의 분야에서 SAP를 사용한다.
3. 관계 전환 비용
SAP의 ERP와 같이 방대하고 다양한 직군을 포함하는 제품군은 다양한 접점에서 구매자와 판매자가 긴밀하게 오랜 시간 동안 협업을 하게 된다. 협업 과정에서 구매자와 판매자들은 관계를 쌓게 되는데, 이 역시 전환 비용의 큰 축이 될 수 있다.
고객사들은 잘 아는 영업 사원을 통해 신규 제품과 서비스를 계속해서 구매하는 것이고, 영업 사원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고객사를 지원한다.
전환 비용의 속성
규모의 경제나 네트워크 경제와는 달리, 전환 비용은 시장 내 모든 플레이어가 독립적으로 가질 수 있는 Power이다.
IBM, Oracle, 그리고 SAP는 서로 경쟁하는 사이이지만, 독립적으로 각자의 기존 고객을 상대로 전환 비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또한 시장이 성숙기를 거치면서 전환 비용은 시장 내 모든 플레이어에게 점차 투명하게 공개되고, 따라서 경쟁기업의 전환 비용의 규모를 파악해 신규 모객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성숙기를 거치면서 경쟁은 과열된다. 경쟁이 심화 되면, 전환 비용을 통해 얻는 Benefit은 동일한 Benefit을 얻고자 하는 경쟁사들로 인해 소멸(arbitraged)한다. 따라서 전환 비용을 통해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전략은 오직 가격 경쟁이 발생하기 전 단계의 시장에서만 유효하다.
전환 비용을 높이는 방법
위에서 언급했듯이 전환 비용을 만드는 기업이 계속해서 기존 고객들에게 판매하지 않으면 Benefit을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전환 비용을 만드는 기업은 지속적인 판매를 할 수 있도록 신제품을 개발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늘리는 전술을 채택할 수 있다.
SAP의 제품 포트폴리오 (2014년까지)
전환 비용을 만드는 기업은 M&A를 통해서도 제품 포트폴리오를 키울 수 있다. 이 역시 SAP가 채택한 전술 중 하나이다. M&A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키워 지속적인 이익을 거두는 것과 더불어 재무적 전환 비용을 키우고, 전환에 드는 절차를 더욱 복잡하게 하기도 한다. 또한 더 많은 고객과 더 깊은 관계를 쌓을 기회도 창출한다.
SAP의 연도별 M&A 횟수
전환 비용의 원리와 경쟁적 포지셔닝
전환 비용 Power는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전환 비용 Power의 실질적인 원동력(driver)은 시장의 구조 그 자체를 기반한다. 전환 비용의 Benefit은 기존 고객이 있을 때만 적용되므로, 특정 시장 내 경쟁적인 포지셔닝은 내게 기존 고객이 있는가 (전환 비용 발생), 혹은 없는가 (전환 비용 발생하지 않음)으로 나뉜다.
또한 전환 비용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Benefit은 새로운 혁신이나 기술로 인한 시장 구조의 변화로 인해 소멸할 수도 있다. ERP 기업들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SAP나 Oracle들은 클라우드, AI 등의 새로운 기술적 패러다임이 가져오는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인수하는 것이다.
SAP가 2019년에 인수한 Qualtrics:
Oracle이 2020년에 지분 인수해서 화제가 되었던 Tiktok:
전환 비용은 또한 다른 추가적인 Power를 얻을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존 사용자들을 서로 연결해주고 부가적인 호환 제품이나 서비스를 지속해서 출시해서 네트워크 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
또한 전환 비용으로 인해 잔존하는 고객들을 옆에서 지켜보던 많은 잠재 고객들이 구매하기 시작하면 다음 챕터에서 다룰 브랜딩(Branding)의 효과를 누릴 수도 있게 된다.
Surplus Leader Margin
SLM을 직역하면, "시장 리더가 갖는 잉여 마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Surplus Leader Margin: 시장에 형성되어 있는 가격이(pricing)이 경쟁사의 수익을 0으로 만들 때, 파워를 가진 기업이 갖는 수익 마진을 말한다.
s = 강력한 기업 / w = 약한 기업
여기서 약함은 기존 고객의 수가 없는 것을 말한다.
sQ = Competitive Position/경쟁적인 포지셔닝
sQ를 인지한 고객들은 이미 s기업의 제품을 도입했다. 이 가정을 기반으로 어떻게 s가 전환비용을 통해 차후 추가 제품/서비스 판매로 Benefit을 얻는지 알아보자.
s기업과 w기업이 각각 시장에 내놓는 제품이 효용성 측면에서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s는 전환비용(Δ)만큼 더 높은 가격(premium)을 책정할 수 있다.
sP = Δ + wP
제품 및 서비스에 드는 고정 원가가 0이라고 가정할 때,
수익(Profit) ≡ π = [P - c]Q
- P ≡ 가격(price)
- c ≡ 1 유닛에 들어가는 변동비 (variable cost per unit)
- Q ≡ 특정 기간내 생산량 (units produced per time period)
만일 P가 ∋ wπ= 0일때, s의 마진을 결정짓는 요소는 무엇인가?
- wπ = 0 =>
- 0 = (wP - c) sQ
- => wP = c
Δ = 유닛당 전환 비용
s는 프리미엄 가격을 책정할 수 있음. 따라서,
sP = Δ + c
∴
sπ = [(Δ + c) - c] sQ
sπ = Δ sQ
SLM = Δ
산업 경제적 구조: Δ
경쟁적 포지셔닝: sQ
Footnotes.
[1]. Compuware and PAC. SAP Performance Management. A Trend Study by Compuware and PAC. Web. Link.
[2]. Social Media Today. Guest Post: Back by Popular Demand, A Basic Maintenance Offering from SAP. Web. Link.
이 글은 7 Powers: 전략의 본질 프로젝트의 일부이며, 저자 Hamilton Helmer의 프레임워크 7 Powers와 그의 책 7 Powers: The Foundations of Business Strategy를 요약하고, 추가 해설을 조금 덧붙혔습니다. 전체 프로젝트 페이지로 가면 다른 챕터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체 목차/Table of Contents
- 7 Powers: 전략의 본질
- 전략의 본질(Foundations of Strategy)
- 7 Powers: 전략 정역학(Strategy Statics)
3.1. Scale Economies (규모의 경제)
3.2. Network Economies (네트워크 경제)
3.3. Counter-Positioning (카운터 포지셔닝)
3.4. Switching Costs (전환 비용) (본 글)
3.5. Branding (브랜드)
3.6. Cornered Resource (고유 자원)
3.7. Process Power (프로세스 파워) - 전략 동역학(Strategy Dynamics)
4.1.1 Path to Power(파워로 가는 길) I
4.1.2 Path to Power(파워로 가는 길): Invention II
4.1.3 Path to Power(파워로 가는 길): Compelling Value III
4.2. Power Progression - 7 Powers 프레임워크 맵
5.1. 7 Powers 프레임워크 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