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로 가는 길(1): 배의 키는 배가 움직일 때만 쓸모 있다.
7개 파워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했다면, 당신의 기업은 망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제 우리는 7가지 파워(Power; 이후 번갈아가면서 쓴다) 모두를 이해하고 있다. 7가지 파워 중 하나 이상을 갖추고 있는 기업은 시장에서 현금을 쓸어 모으지만, 하나라도 갖지 않았다면, 냉정하게 말해서 존폐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7 Powers가 무엇인지, 각각 파워의 속성, 사례 등을 공부한다고 해서 우리 기업도 7 Powers 중 하나 이상을 골라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속성과 사례를 공부하는 것을 포함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 지, 그리고 "어떻게" 파워를 갖출 수 있게 되는 지 알아야 한다.
전략 동역학 (Strategy Dynamics)에서는 7 Powers 중 한 개 이상을 갖추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 ("What must I do to establish Power?"), 그리고 그 활동들을 언제 해야 하는지 ("When can I establish it?")에 대해 다룬다.
우리는 넷플릭스의 사례를 통해 규모의 경제(Scale Economies) 파워를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넷플릭스가 "어떻게" 규모의 경제를 갖추게 되었는지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면서 7 Powers를 전반적으로 (규모의 경제뿐만 아니라) 어떻게 갖추게 되는지 설명할 것이다.
후에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이쯤에서 강조해둘 것은 모든 파워는 어떤 특정 '발명'(invention)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혀서, 기업의 발명은 "전략의 본질의 수식"(Fundamental Equation of Strategy)에서 M0 의 크기를 결정한다.
넷플릭스와 규모의 경제
(무려) 2003년에 (7 Powers 저자) 해밀턴 헬머가 넷플릭스의 투자자가 되었을 때 해밀턴은 두 가지 가설을 갖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 당시 DVD 구독 렌탈 사업을 하던 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를 상대로 카운터 포지셔닝(Counter-Positioning) 파워를 갖추고 있었고, 다른 DVD 구독 렌탈 사업자들을 상대로는 프로세스 파워(Process Power), 그리고 규모의 경제(Scale Economies)를 갖추고 있었다.
- 대부분의 투자자는 이 사실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 헬머는 그의 가설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했고 7년 뒤 2010년에는 블록버스터가 급기야 파산을 신청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투자는 꽤 성공적인 투자였지만, 헬머는 이때 새로운 두 가지 가설을 세웠다고 이야기한다.
1. DVD 렌탈 사업은 '거쳐 가는' (transitory) 사업이다. 넷플릭스의 사명이 이 점을 잘 말해준다. 넷플릭스는 기술이 고도화되면 언젠가는 인터넷을 통한 스트리밍 서비스로 사업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2005년에 CEO 리드 해이스팅스(Reed Hastings)는 이런 말을 했다.
"물론 DVD는 앞으로도 계속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일 겁니다. 우리 넷플릭스는 앞으로도 최소 10년은 이 시장을 지배할 거예요. 하지만 인터넷 스트리밍은 머지않아 가능해질 겁니다. 그리고 그 사업을 하는 회사는 분명 엄청나게 큰 회사가 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 회사 이름이 '넷플릭스'인 거고요, 'DVD우편렌탈'이 아니라.
2. 인터넷 스트리밍 사업에서는 (당시) 넷플릭스가 갖추고 있는 파워는 없었다. 스트리밍 기술은 누구나 구현할 수 있고, 콘텐츠 시장에서는 콘텐츠 IP를 가진 기업이 무조건 우위를 점한다.
아마도 2003년 당시 넷플릭스 역시 이 두 가지 가설에 대해 같은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스트리밍 사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2010년이 되자 넷플릭스의 성장 엔진에는 스트리밍 사업이 있었다. 2007년에 120만 명이 쓰던 서비스가, 2010년에는 770만 명이 되어있었다.
폭발적인 성장세에도 7 Powers를 읽은 독자라면, 이쯤에서 들 걱정이 "어떻게 arbitrage를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이다. 재차 복습하자면, Arbitrage는 파워의 이익(Benefit)을 경쟁자도 취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스트리밍 사업은 우수한 운영을 갖추기만 해도 할 수 있는 사업이다. 여기서 우수한 운영이란 콘텐츠 IP 라이센싱을 계약하고, 스트리밍 서비스 앱을 만들어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이클 포터 교수가 말했듯, "우수한 운영"(operational excellence)은 전략이 아닌 이유다.
물론 우수한 운영이 '필수 조건'임은 확실하다.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운영 없이는 불가능하다. "Given" 인 것이다.
전략의 본질 수식에서는 우수한 운영 독단적으로는 m을 키울 수 없고, 동시에 시장이 크는 (s의 증가) 것과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경쟁사들은 우수한 운영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다. 어떤 한 회사가 유용한 기능을 출시하면 몇 달 후에 시장 내 모든 경쟁사가 같은 기능을 갖추게 되는 것이 좋은 예다.
다시 넷플릭스의 사례로 돌아가서, 넷플릭스에게도 우수한 운영을 통해 갖추게 된 것들이 있다. 성공 요인이 아니라 필수 조건(given) 이지만, 흔히들 성공 요인이라고 칭찬 받는 것들이다:
1. 제품 (UX/UI)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앱 개발에 큰 공을 들였다. 넷플릭스가 하루에도 수백 번의 A/B 테스팅을 통해 사용자 경험을 최적화하려 한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 놓으면, 경쟁사와 후발주자들은 따라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넷플릭스가 처음 제시한 레이아웃은 이제는 HBO, Disney+, Watcha 등 모든 스트리밍 사업자들이 사용한다.
2. AI기반 추천엔진
넷플릭스의 추천 엔진은 예전부터 넷플릭스의 자랑이었다 (지금은 볼 것 다 봐서, 넷플릭스만 켜면 볼 것이 없다고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추천을 제공하기 위해 넷플릭스는 알고리즘 개발 경진 대회(Netflix Prize)도 개최하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어떤 독자들은 추천엔진을 잘 만들려면 규모의 경제 파워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실이지만, 선형적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사용자에게 80% 정확도나 84% 정확도나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수확체감효율의 법칙 (law of diminishing returns)이 적용된다. 경쟁사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80% 정확도는 낼 수 있게 된다.
3. IT 인프라
영상은 엄청난 양의 밴드위스와 스토리지가 필요하다. 지금은 유튜브인 것 같지만, 2011년 당시 넷플릭스는 인터넷에서 가장 많은 밴드위스를 가져가는 사이트였다.
넷플릭스는 직접 데이터 센터를 만들고 밴드위스를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초기부터 IT 인프라는 자신들의 핵심 역량(core competency)이 아님을 깨닫고 AWS에게 맡기게 된다.
물론 제품, 추천엔진, IT인프라 모두 전문 영역이고, 엄청난 노력 없이는 제대로 갖추고 유지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들'만' 갖고는 넷플릭스가 계속해서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다.
Content is King
일찌감치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사업의 핵심은 콘텐츠 수급임을 깨달았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핵심 가치는 곧 콘텐츠이며, 사용자들은 콘텐츠를 따라 서비스를 바꾸거나 확장하게 되어 있다.
초기 넷플릭스 비용 대부분은 콘텐츠 라이센싱에서 발생했다. 콘텐츠 IP 제작사들이 '갑'이니 주로 콘텐츠 사용량에 기반해 과금하는 방식으로 계약이 체결되었다.
넷플릭스는 이런 산업 구조를 바꾸고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지 않고서는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을 직감한 것이다.
스트리밍 라이센싱에서 단독 스트리밍으로, 그리고 오리지널 콘텐츠로
물론 넷플릭스에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나가는 구독자 베이스가 있었다. 그 구독자 베이스의 규모를 레버리지 삼아 비용을 낮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규모가 크다고 해서 규모의 경제를 통해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쟁사도 금방 따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arbitrage). 규모(스케일)은 쉽게 arbitrage 당할 수 있는 산업의 속성이었고, 넷플릭스는 큰 규모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넷플릭스는 다른 것보다도 바로 콘텐츠가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콘텐츠는 구독자에게 제안하는 가치 (value proposition) 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제안이었을 뿐만 아니라, 비용 구조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항목이었다.
그때까지 넷플릭스는 주로 콘텐츠 제작자들과 스트리밍 라이센싱 계약을 맺어 콘텐츠를 확보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이 있었는데, 제작자들로부터 콘텐츠를 수급하려다 보니 지역, 개봉일, 계약방식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조건을 맞춰주어야만 했고, 이러한 변동비용(variable cost)은 장기적으로 넷플릭스의 비용구조에 치명적일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넷플릭스의 당시 Chief Content Officer이자 현재는 리드 헤이스팅스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은 테드 사란도스(Ted Sarandos)는 바로 이 시점에 넷플릭스가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독 스트리밍 콘텐츠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란도스는 콘텐츠 제작사인 Epix와 처음으로 단독 스트리밍 계약을 맺게 되는데, 단기적으로는 이 계약을 통해 처음으로 변동비용을 고정비용으로 개선할 수 있게 되지만, 얼마 안 있어 Epix와 다른 콘텐츠 제작사들은 넷플릭스가 비용구조 개선을 통해 자신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음을 깨닫고는 재계약을 요구하게 되었다.
Epix와 타 제작사들은 다른 스트리밍 플랫폼들에 단독 스트리밍 권한을 넘기겠다며 압박을 하게 되었고, Epix는 실제로 결국 아마존 Prime Video와 단독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단독 스트리밍 계약만으로는 쉽게 규모의 경제를 방어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선 넷플릭스는 $100M라는 거액을 투자해 2012년, 첫 메이저 오리지널 콘텐츠인 House of Cards를 제작하게 된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단독 콘텐츠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넷플릭스의 이러한 결정은 언뜻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이는 생각이었다.
오리지널 콘텐츠는 고위험 사업이다. 자본금도 콘텐츠당 수십, 수백억 원이 들뿐더러, 제작 경험이 많지 않은 유통업자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작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려면 수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넷플릭스가 이 시점에 오리지널 콘텐츠 경험이 없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미 자회사 Red Envelope Entertainment를 통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시도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
그런데도 테드 사란도스가 오리지널 콘텐츠와 단독 스트리밍 계약을 밀어붙인 이유는 바로 콘텐츠 수급에 드는 비용을 변동비용(variable cost)에서 고정비용(fixed cost)으로 바꾸기 위함에서였다.
House of Cards를 시작으로 오리지널 콘텐츠 중심 전략을 펼친 넷플릭스의 주가는 100배 가까이 올랐고, 시가총액 역시 $50 billion에 이르게 되었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비용구조 개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간단한설정을 해보자. 예를 들어 구독자 3천만 명을 가진 당시 넷플릭스가 한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100M(=약 천억 원)의 비용을 썼다면, 규모의 경제 덕에 고객당 비용은 $3 남짓일 것이다. (=$100M/30M) 그러나 구독자 백만 명을 가진 경쟁자가 같은 콘텐츠를 라이센싱을 통해 스트리밍하려면 구독자당 $100을 내야 한다.
배의 키는 배가 움직일 때만 쓸모 있다.
넷플릭스의 사례처럼 전략 동역학(Dynamics)에서 이해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는 전략은 움직이지 않는 stable 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하고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헨리 민츠버그 교수의 말에 따라 "전략은 만드는 것(design)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crafting)'이다."
그렇기에 전략은 (많은 사람이 반대로 생각하지만) 계획하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실행하는 사람의 일이다.
넷플릭스의 주가가 100배 이상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넷플릭스조차 해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콘텐츠 스트리밍 시장 차원에서도 아무도 넷플릭스가 실행에 옮겨보기 전까지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통한 고정비용으로의 전환이 규모의 경제 Power를 갖추게 되는 루트인 것을 알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첫 번째 전략 동역학의 원칙을 세울 수 있다. Power를 갖추게 되는 루트 ("getting there") (Dynamics, 동역학)는 Power를 갖춘 것("being there")(Statics, 정역학)과 전혀 다른 개념이다.
정역학 관점에서만 전략을 이해하면 시장점유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기업의 이익이 높아지기 때문에 공격적인 pricing 전략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pricing 전략은 (당연하게도) 경쟁사들과 시장의 현재 상황(Status Quo)을 고려해야 한다. 경쟁사들은 곧바로 가격 전쟁에 뛰어들어 가격을 맞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가는 정역학적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파워를 취득하는지"에 대한 동역학을 이해해야 한다.
...파워로 가는 길 (Path to Power) II 편에서 계속됩니다.
이 글은 7 Powers: 전략의 본질 프로젝트의 일부이며, 저자 Hamilton Helmer의 프레임워크 7 Powers와 그의 책 7 Powers: The Foundations of Business Strategy를 요약하고, 추가 해설을 조금 덧붙혔습니다. 전체 프로젝트 페이지로 가면 다른 챕터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체 목차/Table of Contents
- 7 Powers: 전략의 본질
- 전략의 본질(Foundations of Strategy)
- 7 Powers: 전략 정역학(Strategy Statics)
3.1. Scale Economies (규모의 경제)
3.2. Network Economies (네트워크 경제)
3.3. Counter-Positioning (카운터 포지셔닝)
3.4. Switching Costs (전환 비용)
3.5. Branding (브랜드)
3.6. Cornered Resource (고유 자원)
3.7. Process Power (프로세스 파워) - 전략 동역학(Strategy Dynamics)
4.1.1 Path to Power(파워로 가는 길) I (본 글)
4.1.2 Path to Power(파워로 가는 길): Invention II
4.1.3 Path to Power(파워로 가는 길): Compelling Value III
4.2. Power Progression - 7 Powers 프레임워크 맵
5.1. 7 Powers 프레임워크 맵